`작가 인생 20년` 공지영 [중앙일보]
아버지가 서로 다른 세 아이
`가족의 불행 비난받을 일인지 … `
현재의 사회문제 파헤칠 보고서 관련기사
작가 공지영 '가부장적 사회질서'...
"내 개인적 상처도 시대와 맞닿아...
'작가 인생 20년' 공지영
올해로 공지영은 작가 인생 20년이다.
1987년 구로구청 농성사건을 소재로 한 단편 '동트는 새벽'을 문예지 '창작과비평'에 발표하면서 공지영은 문단에 발을 디뎠다. 88년의 일이다. 이후 그는 이른바 386 운동권 출신으로서 후일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통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러 97년. 장편 '착한 여자'를 내놓으면서 공지영은 페미니즘 작가로 명성을 굳힌다. 지난해엔 사형수와 여교수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장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초대형 대박을 터뜨렸다. 지난해 9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한국소설로는 4년 만에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1위에 올랐다. 소설은 무려 8주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지난 한 해 국내 출판계 최대의 화두는 단연 '공지영 바람'이었다.
다시 10년이 지난 오늘. 이제 공지영은 자신의 가장 내밀한 상처를 소설로 드러내기로 결심한다. 이 땅에서 여자로 태어나 세 번 결혼하고 세 번 이혼한 일은 결코 내세울 만한 이력이 못된다는 걸, 공지영은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소설을 쓰기로 작정한다. 그 용기와 결단에서 치열한 작가의식을 발견한다. 지금은 경기도 분당의 집에서 전화도 끊고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 "가족의 참 뜻 물을 것"
작가가 자신의 가족사를 소설로 쓰는 건 공지영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문학의 대표적인 가족소설로 최인호의 '가족'이 있다. 이 소설은 75년부터 2000년까지 무려 26년간 월간지 '샘터'에 연재됐다. 최인호의 '가족'에서 가족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가족이다. 평범하고 전통적인, 그러니까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시고 슬하에 자녀가 있는 우리네 가족이다.
그러나 공지영의 가족은 사뭇 다르다. 공지영의 소설에서 아버지는 부재한다. 한 명의 어머니가 낳은 세 아이가 함께 살지만, 그들은 성씨가 모두 다르다. 각기 다른 아버지의 성을 따르기 때문이다. 공지영의 이번 소설에서 시대적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건 이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5년까지 국내 이혼 건수는 83만 건이 넘는다. 2005년 한 해 결혼한 재혼 부부(남녀 중 한쪽, 또는 양쪽이 재혼인 경우)만 해도 7만9600건이었다.
한국에서 가족 형태는 이미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족이 사는 모습도 달라지고 있다. 작가는 바로 이러한 시대 변화에 주목한다.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은 어떤 작가가 당대에 각광받는 건 작가의 은밀한 운명이 시대의 운명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어쩌면 내가 겪은 개인적 상처도 시대와 맞닿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공지영이 앞으로 들려줄 이야기는 한 인물의 숨겨진 사생활이 아니다. 당대의 사회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 보고서이자, 가족의 참뜻을 잊고 사는 이들에게 던지는 작가의 메시지다.
# 즐거운 나의 집
"처음엔 억울한 느낌이었어요. 내가 불행을 당한 건데, 불행을 당한 거라면 당연히 위로를 받아야 하는 건데 나는 비난을 받아야 했어요. 나와 내 아이들의 불행이 왜 비난을 받아야 하는 건지 나는 몰랐어요. 불행을 당했는데도 비난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 가장 힘들었어요."
소설은 불행과 비난 모두를 감수해야 하는, 여태 꼭꼭 숨겨놓았던 한 가족의 상처와 고통을 전한다. 그렇다고 어둡거나 우울하진 않을 것이다. 작가는 이미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에 얽힌 작은 일화가 있다. 언젠가 공지영은 열아홉 살 큰딸에게 "엄마가 이혼을 너무 많이 해서 미안해"라고 사과했다. 그러나 큰딸의 대답은 다소 의외였다.
"내가 엄마한테 항의할 수 있는 건 내 아빠랑 헤어진 것 하나뿐이야. 나머지는 엄마 사생활이니까 엄마 개인의 일로 인정해."
큰딸의 이 말에 큰 힘을 얻었다고 작가는 털어놨다. 아이들은 이미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성장해 있었다. 아이들이 반대했다면 그는 절대 이 소설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나도 잘 해나가고 있는 새로운 가족의 이야기를 그릴 수 있겠다"란 자신감은 이때부터 싹텄다.
"악성 댓글 같은 건 이제 신경 안 써요. 미국배우 앤절리나 졸리도 세 아이를 키우고 있잖아요. 첫째 아이는 캄보디아에서 입양했고, 둘째 아이는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입양했죠. 자신이 낳은 아이는 브래드 피트와의 사이에서 낳은 막내뿐이죠. 이 가족은 핏줄은커녕 아예 인종부터 다르잖아요. 이에 비하면 내 가족은 아주 '정상적인 가족' 아닌가요?"
작가는 진작부터 소설 제목을 '즐거운 나의 집'으로 정해놓은 상태였다. 남들 눈에는 '정상적이지 못한' 가족으로 보일지 몰라도, 작가에게 가족은 늘 고마운, 그래서 즐거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즐거운 나의 집'은 그의 큰딸이 자신의 아버지가 재혼할 때 결혼식장에서 피아노로 연주한 축가 제목이다.
손민호 기자
*출처 :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629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