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원 도창회의 문학세계와 명작수필 탐구 * / 안재동
▣ 한국 문단의 ‘와치 도그(Watch Dog)’
무원无源 도창회都昌會 수필가가 수필 잘 쓰는 문인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으리라. <야호고>, <여체>, <설산유정>, <애상>, <겨울을 앓는 사람>, <늦바람>, <경쟁자>, <밤별>, <빈 집>, <거기 그 집>, <선심> 등은 우리 귀에 익히 기억되는 도창회 수필가의 대표적 명작수필이다.
도창회 수필가는 대학에서 40여 년간 줄곧 영문학을 강의하다가 정년(동국대학교 교수)을 끝내자마자 전라도 장수에서 3년8개월, 강원도 백봉련에서 1년6개월 등 깊은 산 속과 경기도 대부도 등지의 벽촌․오지에서 오직 수필과 시창작에만 몰두하기도 했다. 그처럼 창작을 위해 속세를 등지면서까지 산고를 치루는 작가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 기간 중 쓴 작품이 <빈 집>인데, 신비주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수필이다. 진정한 작가로서의 면모가 드러나 보이는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2004년에 돌연 산 속에서 나와 한국문인협회 임원선거에 뛰어 들면서《밤별》이란 수필집을 내고 수필분과 회장으로 출마하여 거뜬히 당선되기도 했다. 선거 도중 작은 형님이 별세하였는데, 그 때 쓴 <분과 회장이 무엇이길래>라는 수필 속에서 선거 당시의 긴장된 상황을 잘 읽을 수 있다.
▣ 우리시대 수필문학의 거목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그러므로 수필가는 수필로 말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수필가는 수필을 제외하고는 의미가 없다할 것이다. 과거나 현재나 많은 사람들이 수필을 쓴다. 하지만 수필작가라면 다 안다. 도창회 수필가의 수필이 작품다운 작품이란 뜻이다.
도창회 수필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그의 창작이력을 좀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도창회 수필가는 일찍이 세계에서 으뜸이라는 영국문학과 미국문학을 연구하여, 1964년부터 무려 40여 년 동안이나 국내외의 여러 대학과 대학원 등에서 영문학을 집중적으로 강의하였다. 그러면서 거의 같은 기간 동안 시와 수필의 창작활동까지도 왕성하게 병행해 온 저력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인지 도창회 수필가가 연구한 다방면의 문학이론과 창작이론이 실지로 자신이 창작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먹고 사는 직업이 문학교수이다 보니 가르치며 연구한 내용들이 그의 창작활동에 지대하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도창회 수필가가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할 당시 피천득과 양주동 두 교수가 그의 은사였다는 점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도창회 수필가가 대학원 과정에서 공부할 당시에는 양주동 교수가 도창회의 수필을 보고 그의 문통文統을 잇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아호雅號를 무원无源이라고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학점도 100-1=99점을 주면서 1점은 자기가 죽은 후에 가져가라며 웃었다는 일화가 있다. 1점을 더 주면 한국의 국보가 바뀐다는 뜻의 농담이다.
연보에 의하면 도창회 수필가는 1937년 경북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에서 태어났다. 벽진초등학교와 성주중학교, 대구에서 계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대구 계성학교는 시인 박목월과 소설가 김동리가 다니던 학교이기도 하다. 육군에서 군복무를 마쳤다. 제대 후 동국대학교 영문과에 복학하여 동 대학과 대학원에서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뒤 1964년 동국대 문리대 강사를 시작으로 전임교수가 되면서 10여 개 대학에서 영어영문학 강의를 맡게 되었다.
도창회 수필가의 문인으로서의 길은 1964년 수필 <여자의 손톱>과 시 <기구祈求>를 각각 발표하면서 지금까지 41여 년 남짓이나 창작활동을 해 왔다.
도창회 수필가는 그 동안 한국문인협회 이사를 비롯해 국제펜클럽 위원 및 자문위원을 역임하고,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수석부회장, 한국자유시협 이사, 동국문학회 이사, 한국민족문학회 자문위원, 한국불교문인협회 부회장, <해동문학> 등 10여 개 문학지들에 고문, 자문, 편집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장과 한국(신)문예협회 회장 등 중요한 직책을 수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활발한 문학 활동에 대해,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문예협회 공로상과 한맥문학 대상, 문예한국 대상, 21 민족문학 대상, 허균문학 대상 등 여러 가지의 굵직한 상이 그에게 돌아오기도 하였다.
도창회 수필가는 수필이론서로 《수필문학론》(1993), 《한국현대수필의 사적 고찰》(1996) 등을 내면서 수필의 이론체계의 정립과 수필문학사를 정립한 학자이기도 하다. 수필집으로 《땡감을 깨무는 마음으로》(1985), 《겨울을 앓는 사람》(1988), 《바람밥》(2000), 《무원(无源) 수필》(2001), 《밤별》(2004)등 5권을 저작했다. 그 외에도 《영미수필선집》(1989)을 내어 우리 수필계에 서양수필을 가장 적극적으로 소개했으며, 수필에 관한 논문도 수십 편에 이른다.
도창회 수필가는 1964년부터 지금까지 수필창작과 함께 단시집으로 《혼불Ⅰ,Ⅱ》(1988) 등 5권과 장시집으로 《장송비가》(1995), 《한 영혼의 연가》(2004)를 내면서 시창작에도 열정을 쏟아 왔다. 그 중 《장송비가》와 《한 영혼의 연가》는 한국시사에 고전古典으로 남을 만한 작품으로 세상에 잘 알려진 장시집이다.
오늘날 한국 수필문학의 대표적 문인이라 할 수 있는 도창회 수필가이지만, 그에게도 수필창작에 있어 어려움이 아주 없지는 않았던 것으로 확인된 바 있는데, 어느 워크숍 자리에서 “근 40여 년간 수필을 300편 이상이나 썼는데도, 그 중 꼽을 수 있는 것은 10여 편 정도”라고 그가 스스로 밝힌 것이 그것이다. 이는 한편으론 매우 겸손함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는 수필의 이론과 실제 양면에서 국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작가임은 말할 것도 없다.
▣ 수필문학 사상초유로 세 번에 걸친 수필창작 태도의 변신
앞서 언급했지만, 도창회 수필가를 제대로 아는 이들이라면 그를 한국 수필의 거목으로 부르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 주된 이유는 위에 소개한 내용들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정작 중요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수필창작의 태도를 세 번씩이나 지속적으로 변신을 꾀한 작가라는 점이다. 리리시즘(lyricism) 즉 서정수필을 썼다는 것이 그 첫 번째요, 에로티시즘(eroticism)을 표방한 이미지수필을 썼다는 것이 그 두 번째요, 유미주의唯美主義 즉 美를 위한 美를 추구하는 수필을 쓴 것이 그 세 번째 변신이다. 국내에 많은 수필가들이 있지만 수필문학사상 이렇게 세 번에 걸친 변신은 도창회 수필가의 경우가 현재까진 유일한 작가가 아닌 가 한다. 이는 시 분야의 고 서정주 시인과 맞먹는 창작의 변신이기도 하다. 그 변신의 내용이 어떠한 것인지 지금부터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도창회 수필가가 최초로 보여준 창작태도는 리리시즘이다. 서정수필 <겨울 달빛>, <봉평 달빛>, <허공>, <죽절성竹切聲>, <거미>, <노을 밭> 등의 수필에서 보여준 문장의 서정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의 서정수필의 주제의식은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든 역작들이다.
다음으로 시도한 창작태도는 에로티시즘이다. 옛적 도창회 수필가의 유명한 수필작품 <여체>가 나왔을 때 수필가 박재식 선생은 『월간문학』 월평에서 그에 대해 “한국 유일의 에로티시즘(eroticism)의 작가로 그의 명성이 극에 달했다”고 밝히면서, “한국 수필가들 중 홀로 에로티시즘의 씨를 수필의 밭에다 뿌려 경작해 가을에 확고하게 큰 수확을 거둔 유일한 작가다.”라고 극찬한 바 있다. <여체> 외에도 <열애>, <물망초 사랑>, <나의 첫 산행>, <야호고>, <죽절성>, <편지>, <상여집 추억>, <경쟁자>, <늦바람>, <설산유정> 등 많은 작품들이 너무나 잘 알려진 에로티시즘의 수작들이다.
세 번째로 변신을 꾀한 창작태도는 바로 유미주의다. 이 유미주의 패러다임의 수필은 도창회 수필가가 초유로 썼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유미주의 수필이란 새로운 패러다임 전통적 우리 수필의 두꺼운 벽을 깨므로 의의가 있어,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 좀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기로 하자.
한상렬 문학평론가는 그가 상재한 <도창회 교수의 수필 연구>라는 논문에서 “도창회 교수가 우리 한국의 전통 수필을 벗어버린 수필창작의 새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었다”고 극찬한 적이 있는가 하면, <수필창작의 새 패러다임>이라는 주제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한국 명수필의 현장으로 발표된 도창회의 일련의 수필은 그의 수필쓰기의 세 번째의 변신을 보이고 있다. 한 마디로 유미주의 수필에의 시도다. 그는 이들 수필에서 작법상 내적 갈등의 심화, 페이소스, 속도감, 클라이맥스, 카타르시스를 중요시했다고 말하고 있다. 수필창작의 새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주목해 볼만한 창작 의도가 아닐까 싶다.
수필 <거기 그 집>과 <빈 집>은 종래 우리가 보아오던 전형적인 수필쓰기의 양상과 큰 차이를 보인다.
화자는 ‘거기’를 향해 길을 떠난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그를 만나기 위해 얼마만인지 그도 분간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의 길 떠남이다. 그런데 그의 마음은 아주 불안하다.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혹시 무슨 일이나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때문이다. 그는 기차를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또 걸어서 그 곳에 당도하여 그를 만나고자 한다. “지금 내 마음은 그를 만난다는 마음에 앞서 있어 내가 거기까지 어떻게 가는가의 과정은 안중에도 없다. 아마도 내가 내일 아침 그리로 떠날 때까지는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를 만난다는 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나의 가슴은 놀라서 뛰고 있다.” 도무지 수필의 행로를 찾을 수 없다. 화자인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가 누구인지 분명치 않다. 가려는 목적지도 분명치 않다. 기차와 버스 그리고 도보로 간다.
전개되는 언술의 중심에 의미 생성이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언화言話만이 계속된다. 유미주의 작품은 심리적 내외적인 갈등의 진행에 역점을 둔다. 프랑스와 영국에서 한 때 유행한 이 문예사조는 예술은 그 스스로를 위해 있는 것이므로 도덕적, 정치적, 기타 비예술적 표준에 의해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 근본 입장이었다. 칸트가 “유미적 판단은 사사로운 이해관계가 없는 순수한 행위”라고 설파한 것이나 쇼펜하우어의 “예술은 인간의 정신으로 하여금 의지의 속박을 받고 있는 속된 생활에서 벗어나게 하는 지고한 기능이 있다.”고 주장한 것은 같은 맥락에서 파악한 것이었다.
특히 보들레르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유미적 구호를 실제 인생에 적응시켜 예술을 위해서 현실생활 전부를 바쳐야한다는 예술지상주의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들 유미적 경향은 예술의 존엄성을 신봉하는 엄숙한 문학예술가들을 포용하기도 하였으나 보다 일반적으로는 퇴폐적 양상을 띠었다. 그런 까닭으로 좁은 의미에서는 퇴폐적 경향을 띠기도 했다. 이는 한 때의 병적인 문학적 유행으로서 문예사회학적인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고찰하면 이른바 전위적 예술의 일단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데 수필작가 도창회는 지금 그런 유미주의적 경향의 수필로 수필창작의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한상렬, <수필창작의 새 패러다임>에서). 그 외 그의 유미주의를 표방한 작품으로 <덫>, <모닥불>, <절전의 날>, <지하철에 사는 생쥐> 등으로 문제작의 수필을 계속 내고 있다.
이상과 같이 리리시즘 → 에로티시즘 → 유미주의로 이어지는 그의 수필창작은 또 어디로 변신해 갈는지 짐작키 어렵다. 수필가 오경자가 “도창회 교수의 새 수필이 나올 적마다 모든 수필가들이 주목한다.”고 말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듯 그의 수필은 한 편 한 편이 나올 적마다 수많은 수필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 외골수의 휴머니티로 상징되는 도창회의 수필세계
공덕룡 문학평론가(문학박사․단국대학교 부총장 역임)는 도창회 수필가의 수필세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 인간의 그 글’이란 말대로 수필은 가장 진솔한 자기표현의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도창회를 잘 아는 사람이 그의 수필을 읽으면 누구나 공통되게 느끼는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작가와 글이 똑같이 잘 맞아 떨어진다는 느낌일 것이다. 대개는 인간과 그가 쓴 글이 딱 맞아 떨어지지 않을 경우가 많은데 이상하게도 도창회를 잘 아는 나로서는 그의 작품을 읽으면 그의 인격과 그의 수필이 ‘그 사람의 그 글’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도창회는 단순하고 또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러나 그 소탈한 성격의 저변에는 항상 슬픔과 고뇌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그래서 그런지 도창회 수필도 대개 밝은 분위기로 시작되지만 종국에 가서는 우수나 고독이 짙게 깔려 있음을 본다. 인생을 喜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인생이란 종국에 이르면 슬픈 존재다. 슬픔을 슬프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마음도 궁극적으로 슬프고 그러나 그 슬픔을 의식하지 못한 채 그 슬픔 속에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하지만 도창회는 그 슬픔 속에 절대로 외면하지 않는 휴머니티를 가진 작가다.
진실에로 향한 그의 외골수의 휴머니티가 그 전 작품에 깔려 있음을 본다. <겨울을 앓는 사람>은 미치광이를 다룬, 미치광이의 세계를 그린 것이다. 양지보다는 음지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휴머니티에 대한 깊은 애정을 쏟지만, 허나 의식이 바른 우리가 의식이 없는 광인에게 역설적으로 평화를 느끼는 장면은 다시 거꾸로 뒤집으면 그 속에는 아픈 진실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굴뚝 위에 뜨는 연기>에서 ‘죽음의 의미에서 삶을 음미하는 시간’을 갖는다. 친한 친구의 시체가 타서 굴뚝 높이로 떠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뼈 시린 허무를 느끼며 ‘죽음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물음을 독자에게 공감시키는 것이다. <허공>은 오늘 떨어지는 낙엽에서 별리를 느끼고, 다시 메뚜기를 날려 보내고 울던 어릴 적 자기로 돌아간다.
하기야 인생노정도 하나의 별리의 연속임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주정적이면서도 암시성이 강한 수필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시작과 종말>은 T·S 엘리엇의 도착된 시간관념을 수필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그 외에도 도창회의 <불시착>, <거미>, <불가사리>, <무상고독론>, <빈들에 서서>, <빚잔치> 등은 죽음과 고독을 주제로 한, 슬픔 속에 진실을 표출해내는 휴머니티를 깐 수필들이다.
수필을 장르 면으로 볼 적에는 시는 시가 설 땅이 있고, 소설은 소설이 설 땅이 있듯이 수필은 수필이 설 고유의 땅이 있다. 시도 소설도 서지 못할 수필만이 설 수 있는 고유의 땅이 있는 것이다. 소설가가 소설을 쓰듯이 수필가는 수필을 쓴다. 수필과 소설은 다같이 산문이지만 그러나 서로 장르가 다른 문학이다. 도창회는 40여 년간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해 오면서 서양수필을 가르쳐 왔기 때문인지 그의 수필에서 역력히 보이는 점은 그는 그 나름대로의 수필이론을 세워놓고 그 이론 위에서 수필을 구축하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 수필에 플롯이 없다고 하지만 그는 자기의 수필을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해 수필구성에 매우 애를 쓴 흔적이 보인다. 그의 해학적인 수필들이 바로 그런 것들인데 <늦바람>, <경쟁자>, <속임수>, <공중변소>, <야호고>, <안경소동> 등의 수필구성을 한번 잘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독자의 흥미를 유발시켜 배꼽을 잡고 웃다보면 어느 새 수필은 끝을 맺는다. 기승전결이 도치되거나 일정하게 지켜지지 않았지만 조금도 독자의 무리한 상상의 요구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점을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끔 기지가 번뜩이고 허구를 과감히 도입하는 일이 있지만 그러나 수필에 잘 수용하는 편이어서 멋을 잘 살려낸다. 그리고 그의 최근작 <죽절성>, <타인의 뒷모습>은 이미지즘을 도출해 낼 수 있는 작품으로 대나무가 부러지는 소리와 자기 아닌 타인의 뒷모습에서 그는 어떤 변신된 상징성을 찾고 있다고 하겠다.(공덕룡, 《겨울을 앓는 사람》 서평 ‘도창회의 수필 세계’에서)
한편, 강범우 문학평론가(수필가)는 도창회 수필가의 수필세계를 다음과 같이 강평하고 있다.
수필가 램은 찰스 램이면 되듯이, 수필가 도창회는 도창회이면 되는 수필의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 달리 말하면, 도창회의 수필은 그만이 갖는 특유한 맛과 향기의 글을 쓴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맛과 향기를 어떠하다고 꼭 집어내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러나 분명히 그의 수필을 읽고 있으면 독자가 그의 글 속에 빨려 들어갈 만큼 자기 특유의 마력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이런 마력 같은 것이 그를 대가다운 면모로 있게 함이 아닌가 한다. 무어라 해도 수필은 우선 읽어서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독자가 글을 읽으면서 딴전을 피우게 되면 그 수필은 별 볼일 없는 글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도창회의 수필은 하나하나 읽게 되면 눈이나 생각을 딴 곳으로 돌릴 수가 없다. 그만큼 독자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는 무슨 힘이 있다는 뜻이다. 그가 수필에 대해 갖는 애정만큼이나 그는 그의 수필창작에 능란한 솜씨를 보인다. 다시 말하면, 수필을 문학으로 존속케 하는 솜씨에서 우리는 그의 작품을 평하게 된다. 그는 한 생 대학에서 서양수필(영․미 수필)을 강의해 오면서 수필의 이론과 실제에 통달한 작가이다.
서양수필 하게 되면, 수필장르 고유의 본질처럼 되어 있는 것이 해학과 기지성이다. 해학이 들어있지 않으면 글이 아닌 것처럼 느끼는 게 서양수필의 현실임에 비추어 도창회의 수필의 재미는 바로 그와 같은 것에 기인하는 듯 싶다. 그의 수필 <늦바람>, <경쟁자>, <여체>, <공중변소>, <잃어버린 음성>, <죽절성>, <야호고>, <주호경>, <설산유정>, <곡마단>, <두 사람> 등 모든 작품이 해학성이 있고 기지성이 번득인다. 수필이 문학이려면 바로 이 해학성의 돋보임이 좌우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작품 <야호고>는 옛것에 대한 그리움, <죽절성>은 여자의 정절이 무너지는 것을 상징했고, <주호경>은 술 글로 술의 의미를 승화시켜 놓았고, <여체>는 실로 에로티시즘의 극치라 할 만큼 그 격을 높인 작품으로 그의 상상력은 놀랄 만 하다. <잃어버린 음성>은 한 편의 꽁트를 읽는 듯 소설기법의 수필을 실험해 놓은 명작이다.
그의 수필은 모두 주제성이 강하고 주제를 끌고 가는 주제의식이 투철해서 잡문성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음을 본다. 그런가 하면, 그의 문장은 치열할 정도로 구사해 우리 언어가 갖는 최고의 명징성과 적절성을 도출해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어라 해도 수필은 심도 있는 문학 문장으로 표현의 달관이 없이는 명작이 태동되기 어렵다.
또 하나의 도창회의 수필이 재미있게(또는 심각하게) 읽히는 점은 그의 여린 감성이 만들어내는 특유한 서정적 정서에서 찾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의 수필은 저변底邊에 슬픔과 고뇌의 그림자가 깊게 깔려있다. 대개 밝은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종국에 가서는 전편에 우수나 고독이 느긋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슬픔을 슬프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마음도 궁극적으로 슬프지만 그 슬픔을 의식하지 못한 채 그 속에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도창회는 그 슬픔 속에서 절대로 외면하지 않는 휴머니티를 가진 작가이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바람밥>, <거미>, <허공>을 비롯하여, <꽃 진 자리>, <겨울 달빛>, <임자 없는 나룻배>, <기적>, <솔바람 소리>, <노을밭>, <내외> 등에 그의 외골수 휴머니티가 그의 전 작품에 짙게 드리워져 있으며, 그를 저버리지 않는 한 그의 수필은 성공할 수가 있는 것이다. 아무려나 그의 수필은 한 편 한 편 심오한 의미의 인생(관)이 담겨져 있어 우리를 진실에로 이끌고, 또한 우리를 감동케 한다.(《바람밥》 강범우의 서평 ‘해학과 휴머니티의 수필’에서) 어느 다른 평론가는 도창회 서정수필의 문장은 “더도 덜도 말고 가장 알맞은 수필문장이다.”라고 평한 적이 있다.
▣ 무원의 명작 수필세계, 그 이면은 해학과 기지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공덕룡․강범우 두 문학평론가는 도창회 수필가의 수필세계에 있어 해학성을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와 같이, 해학성이야말로 도창회 수필가의 수필에서 가히 백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상렬 문학평론가 역시 그의 아홉 번째 평론집인 《현대수필작가연구》(서해, 2000)에서 도창회 수필가의 수필세계에 있어 그러한 독특한 해학성에 특별한 의미를 두며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강론하고 있다.
도창회의 문학 활동은 수필창작과 시창작 그리고 수필문학에 대한 연구 등 세 개의 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는 그의 수필창작이 수필론에 입각한 이론과 실기의 양면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게 한다. 특히 그의 수필에 대한 이론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그가 창작해 내는 수필작품에 있어 이런 경향이 노정될 것이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수필집 《바람밥》(교음사, 2000)의 표제 작품인 <바람밥>은 그의 수필이 지닌 ‘바람’의 의미를 보여준다.
“사내가 가는 길에는 언제나 바람이 드세다. 쾌청한 날에도 바람은 불고 궂은 날에도 바람은 인다. 바람을 마시고 돌아가는 바람개비처럼 사내들은 바람밥을 먹고 산다.”고 했다. 사내는 바람을 들이키며 살아간다. 여기 ‘바람’은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되는 온갖 인간적 고뇌요, 번뇌라 하겠다. 아니 한 인간을 둘러싼 시대나 환경적 인자요, 삶이라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애환이다. 그래서 “때로는 어림없는 이상을 찾아 나서다 때 아닌 돌풍을 얻어맞는다. 때로는 당혹과 곤혹의 엇바람. 때로는 질시의 칼바람. 때로는 복수의 피바람. 때로는 갈기갈기 설분을 찢는 한恨바람. 갖가지 이어지는 바람을 들이키며 사내는 살아간다.” 이는 그가 의미를 부여하는 ‘바람’이다. 이런 바람만이 아니다. 그에게는 또 하나가 있다. ‘바람끼’다. “처녀 총각의 가슴에 바람이 들 때 그들이 아름답게 보인다. ‘바람끼가 있다’는 말이 황막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생활의 촉기를 불어넣는다는 말이 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이렇게 그가 천착하는 ‘바람’의 의미는 두 개의 축으로 대별된다. “거리의 악사처럼 허파에 바람을 넣고 산다.”는 그의 언술과 같이 정체는 우리를 순치시키는 매체라 하겠다.
저 나뭇가지 끝을 흔들고 흩어지는 바람의 정체는 내게 무엇이던가. 바람처럼 흘러와서 바람처럼 떠나가는 이 허풍진 한 생애! 한 생 풍증風症을 앓다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구석진 세월에 몸을 묻어야만 한다. 도처에 분분紛紛한 바람을 어떻게 순치順致할 수 있으리오만 이 걷잡을 수 없는 광풍狂風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몸짓이 잠잠히 길들어가는 것이다.
― <바람밥>에서
‘바람’의 의미를 찾고자 고뇌하는 화자의 이런 내면의 독백. 그래 “바람은 만남이요, 머무름이요, 떠남이다. 바람은 우리 한 생의 모습이다. 아니, 영락없는 우리 모습 그대로다.”라는 독백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수필은 이렇게 자아 각성이다. 자기를 관조하면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바람’은 의미를 획득하며 미적 형상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우후여정雨後餘情>이 그렇다. “창 너머 내리는 비를 완미玩味하고 있으면 젖는 것은 마음뿐만 아니다. 지난날의 추억이 빗물에 젖고, 결별한 사랑이 젖고, 골몰스러웠던 지난 시절의 풍경이 하나하나 빗물에 젖는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정서적 분위기에 젖을 줄도 안다. 수필 <곡마단>은 그저 어린시절 추억 어린 한 편의 풍경화가 아니다. 피에로의 동작이 함박꽃을 피웠고, 피에타의 슬픈 몸짓이 이슬을 맺게 하였지만, 더 중요한 의미는 우리 인생과도 흡사하다는 것이다.
높은 장대 끝에 거꾸로 매달린 어린 광대의 모습에서 흡사 위기에 몰린 나의 역로逆路 같은 것이 느껴지고, 늘인 줄 위를 걷는 광대는 흡사 인생선人生線을 걸어가는 자신의 모습으로 보이고, 가설무대 위에 오른 희비사는 바로 우리들의 생활 모습 같아서 더욱 인생 실사實寫를 절감한다. 특히 어릿광대 피에로의 웃음과 슬픔이 주는 의미는 나의 타고난 본색을 속이지 못하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는 바보 같은 순수를 실감케 하니 나는 늘상 바보로만 살아야만 되는가 보다.
― <곡마단>에서
누구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자책과 회한이 서린다. 지난 세월은 언제나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여기에 자기 관조와 성찰이 주는 의미가 있다. 수필은 그만큼 인간 삶에 천착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로 가는가? 기약 없이 떠나는 발길이다. 정처 없이 떠도는 몸이다. 세월을 좇아 살아오면서 근린近隣에게 누累가 안 되려고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되돌아 보낸 세월이 모두에게 신세만 지고 가는 성 싶다. 여여한 마음이 가이 없다.”(수필 <꽃진 자리>에서)라는 말은 바람과도 같은 삶에 대한 성찰이자, 관조의 모습이다. 어찌 꽃진 자리를 보며 새봄을 기약하는 찬란한 슬픔을 장식해 주길 바라는 마음만이 관조랴. 바람과도 같았던 지난날을 회억하는 화자의 고뇌 어린 인식은 바로 인간애에 근거한 삶의 태도라 하겠다. 도창회의 이런 자각은 삶의 진실을 추구하고자 하는 창작적 의도로 독자를 감동의 파장으로 몰고 간다. 인간이 지닌 원초적 고독을 향한 작가의 이 같은 서정적 정서는 그의 수필 어디에서든 쉽게 찾을 수 있다. 문제는 그가 이런 서정적 정서에만 함몰하지 아니하고 있다는 데에 그의 수필이 자리하고 있는 정신적 지리를 발견하게 한다. 즉 슬픔과 고뇌, 우수의 그림자를 날줄로 하면서도 이를 긍정적으로 직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수필이 지닌 그만의 색깔을 찾게 한다.
다음으로 도창회의 수필에서 발견되는 ‘바람’의 의미는 일종의 ‘끼’가 아닐까 생각된다. ‘바람끼’라는 어휘가 지닌 부정적 의미를 상정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인간적인, 보다 원초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함으로써 그의 수필을 읽히게 하는 마력과도 같은 효과를 갖게 한다.
그의 사랑 이야기는 세 개의 축으로 등장한다. 이를 그저 일상적 의미의 ‘바람끼’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여기서 ‘사랑’이란 프로이드의 말과 같이 ‘생태적 본능’에 해당한다. 다만, 그런 생태적 본능을 욕정의 본능으로 보느냐 아니냐에 있을 것이다.
먼저 유년기의 사랑의 이야기다. 수필 <不忘草 사랑>은 마치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를 보는 듯하다. “그녀는 나이 14세로 내 나이보다 두 살이나 연상의 여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시골 중학교 동학년 동급생이었지만, 화자와는 달리 사춘기에 돌입한 소녀였다. 소녀는 노골적인 사랑의 표현을 해왔지만 화자의 가슴은 열리지 않았다. 소녀는 드디어 비장한 결심을 한다. 소녀의 계획적인 시험이었다.
순간 그녀의 두 번째 시험이 시작된 것이다. 그녀는 갑작스러이 풀숲에 발랑 누워 뒹굴며 내 이름을 불렀다. 내 손을 끌어다 자기 가슴 속에 집어넣고 가슴에 들어간 벌레를 끄집어내어 달라고 호소했다. 나는 놀라서 손을 빼었으나 그녀는 자기 가슴을 안은 채 데굴데굴 굴렀다. 나는 겁나는 표정으로 용기를 내어 그녀의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여기야 여기, 아니 여기래두.”
나는 더듬더듬 시키는 대로 벌레 찾는 데만 열중하였다. 바로 그 때였다. 등 뒤에서 큰 기침 소리가 들렸다. 소스라쳐 일어났으나 두 사람은 모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등 뒤에 서 있는 사람은 그녀의 아버지였다. 산에서 풀을 베어오던 차 그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 <不忘草 사랑>에서
다음날 소녀는 등교하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뒤에 들리는 소문으로 그녀는 죽을 정도로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병원에 입원했고,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종내 두 사람의 오해는 풀리지 않은 채로…. 그에게 사랑의 눈을 뜨게 하였던 아름다운 사연은 그로 하여금 잊을 수 없는 상처로 지금껏 남아 있을 것이다. “지명을 넘긴 나이지만 전차 칸 어지러운 군중 속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곁을 두리번거린다.”라는 화자의 말은 그 사랑의 감미로움보다는 상처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다음은 청년기의 사랑의 이야기와 관련한 화소다. 수필 <설산유정>은 열애하던 애인을 친구에게 빼앗긴 슬픔 속에 무작정 집을 떠난 그가 첩첩 산중에서 조난을 당한다. 의식을 찾아보니 화전민의 토방이었다. 그는 설색기雪塞期 길이 막혀 그 집에서 머물게 된다. 칩거 보름이 지나 그 집 외딸을 만난다. 수줍은 산처녀였다. 불면의 밤을 보내던 달 밝은 늦은 밤. 지창에 누가 뭔가 방안으로 드민 밤참. 그는 순간 암탉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녀를 침구 속으로 집어넣고 그의 동줆情을 그녀에게 송두리째 바쳤다고 한다. 그 후 눈이 녹고 떠나는 날.
이튿날 아침 나는 주인에게 그간 진 신세에 깊은 감사를 드리고, 조심스런 발자국을 삽짝으로 옮길 무렵,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따따….”
내 등 뒤에서 비통하게 마당에 꼬꾸라져 엎딘 큰애기가 말 못하는 백치白痴임을 안 것은 바로 그때였던 것이다. 화들짝 놀란 나는 감히 뒤를 돌아다볼 엄두조차 못 내고 그녀가 몸부림치며 뱉는 외마디 절규를 뒤로 남긴 채, 눈을 꼬옥 감고 허둥대는 두 다리에 힘을 주어 황망히 하산 길을 재촉하고 말았다.
― <雪山有情>에서
“그 때 그 설산의 유정을 잊지 못함은 아마도 세상은 돌고 도는 숨바꼭질과 같다는 느낌 때문인지도 모른다.”라는 결미의 언술을 보아, 분명 이 화소는 허구가 아닐 것이다. 이 화소가 허구가 아닌 실제라면, 그 도덕적 행위를 무엇이라 말해야 옳을까? 그저 ‘바람’으로 치부할 일인가?
세 번째의 축은 수필 <늦바람>이다. 외박사건으로 아내의 성미를 건드려 불화음이 높아진 때, 때마침 집에 키우던 개의 발병으로 두 사람의 화해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개는 병이 난 것이 아니고 이웃집 암캐와 늦바람이 난 것이었다. 병이 나서 죽은 줄만 알고 찾아다니다 이웃집 개와 어울리고 있는 것이었다. 아내는 “저누무 개가 주인 따라 똑같이 늦바람이 났구먼. 수컷들은 개나 사람이나 하나도 틀린 것이 없구먼.” 그리하여 다음날 암내를 맡고 낑낑대는 개를 아내는 대문을 활짝 열어 해방시켜 주고 계속 화자만 집안에 가두어 놓았다고 한다. 해학과 기지가 번뜩이는 이 수필은 늦바람과 관련한 또 다른 사랑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오래간만에 외박을 한 번 했다고 아내에게 내침을 받았다. 나는 그럴듯한 정당한 이유를 주워댔지만 아내는 속지 않았다. 나는 아내를 달래도 보고, 얼러도 보고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저 양반 늦바람 난 게로구먼.” 아내는 화가 단단히 났다.
“무슨 소리야. 내가 당신밖에 또 누가 있소.”
능청을 떨었지만 아내는 막무가내였다. 큰소리로 목청을 돋우는 바람에 겁마저 번쩍 났다. 동네방네 소문이 나면 어쩌나 하고 나는 목을 어깨에다 푹 묻고 참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 <늦바람>에서
그의 ‘바람끼’는 다분히 페이소스와 유머를 지니고 있다. 이를 ‘욕정’이라는 말로 매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인간의 생태적 본능을 떠올리게 하면서, 한 인간의 나상을 들여다보는 듯 하다. 인간이 지닌 감정은 물과 같아서 감정의 깊이가 얕은 사람은 외부의 자극이나 내부의 자극에 쉽게 흔들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감정의 상태, 감정적인 성숙을 이룬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현대사회는 그 속성상 니체의 말과 같이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기 마련이어서다. 이런 고독과 소외감이 환희에 찬 사랑을 필요로 하게 되는 지도 모른다. 노년에 이르면 누구나 퇴행 현상에 사로잡힐 수 있다. 쓸모없는 공상이나 이유 없는 강박증, 과거의 상처에 대한 집착, 어린 시절에의 의존심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도창회의 수필에서 보이는 ‘끼’는 앞에서 보듯 상당히 절제되어 있다. 즉 생태적 본능에서 오는 퇴폐적인 본능에 대한 퇴행을 위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근거는 다음의 수필 <잃어버린 음성>과 <허공>에서 잘 나타나 있다. 수필 <잃어버린 음성>은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깬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저예요”하는 한 마디. 그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찾기 시작한다.
누굴까? 분명히 환청은 아니었다. 나는 잠이 깨어 있었고, 그 소리의 음색은 정확히 기억될 만큼 낯설지 않은 목소리였다. 나는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여 보았다. 틀림없이 내가 알고 있는 음성으로 눈에 넣을 정도로 가까운 음성이었다. 그 음성은 내 머릿속에서 몇 바퀴 빙글빙글 돌아 비틀거리더니 어렴풋이 얼굴을 내밀었다. ‘옳지 맞았다’하고 정신을 가다듬어 다가섰지만, 그러나 마치 꽁지만 뽑히고 날려 보낸 참새처럼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 <잃어버린 음성>에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화자는 별별 생각을 모두 떠올린다. 사춘기 시절의 챙겨놓은 연인들의 목소리에서 시작하여 며칠 밤을 뜬눈으로 밝히면서 기억해 보았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는 꿈속에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만난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고 미궁 속으로 이끈다. 꿈이었다. 얼굴 모습은 확연하지 않지만, 나직한 음성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이 수필은 여기서 극적 반전을 일으킨다. “바로 그 때다. 대문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나는 얼른 쫓아나가 대문을 땄다. 아내가 대문을 불쑥 들어섰다. 여보, 저예요. 이럴 수가! 나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음성이 내 아내의 목소리인 줄을! 아내가 장인의 생일로 며칠간 친정에 간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이렇게 기지와 해학으로 일관하면서도 그의 수필은 적당한 거리에서 자신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 점이 그의 수필을 읽히게 하는 건강한 아름다움이라 하겠다. 수필 <허공>에서도 이와 한 가지다.
우리는 늘 헤어지며 살아왔고 헤어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단지 숨 가쁘게 쫓기고 몰리며 살다보니 이런 별리를 잊고 있었을 뿐이다.
― <허공>에서
이렇게 도창회의 수필에서 보이는 ‘바람’의 의미의 축은 존재의 흔들림에서 오는 번뇌와 고통, 그 세월 속에 담긴 삶의 의미를 천착해 가는 과정이요, 또 하나는 생태적 본능과 관련한 사랑의 깨달음 그것이라 하겠다.(한상렬, 《현대수필작가연구》에서)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이제 도창회 수필가의 수필세계에서 차지하는 해학성과 기지의 비중 또는 가치가 대충 어느 정도인지 짐작되리라 믿는다.
그런데 유머가 없는 인간 생활은 얼마나 딱딱할까? 아마 유머야말로 우리 생활과 문화에 더 없이 소중한 요인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문학도 우리 생활의 일부이며 문학 속에 자리하는 유머는 문학의 확실한 운치를 높여주기도 한다.
도창회 수필가 스스로는 그의 저서 《수필문학론》(한누리, 1994)에서 문학이 갖는 유머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학술적으로 보아 유머는 대개 3가지 이론이 있다.
첫째, 우월감(superiority) 혹은 格下(degradation)의 상태에 있을 때 웃음이 만들어지는데, 곧 인간의 어리석음(absurdity)이나 유별남(oddness)이나 결함(infirmity)같은 것들이 우리를 웃긴다고 했다.
둘째, 불일치(incongruity), 기대좌절, 두 생각의 엇갈(bisociation) 등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는 학설이다.
셋째, 프로이드는 긴장(tention)으로부터 해소되거나 금지(혹은 억제:inhibition)로부터 놓여나올 때 웃음이 터진다고 보는 학설이다.
결과적으로 첫 번째의 우월감이나 격하의 이론은 풍자(satire), 비꼼(sarcasm), 불행(misfortune)의 웃음이고, 두 번째의 불일치와 엇갈 이론은 훨씬 더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익살의 웃음을 주지만, 세 번째의 프로이드 이론이 현재까지는 유머론 중 가장 우세하다고 논술한 바 있다.
▣ 도창회가 갈파한 우리 수필의 문제성
도창회 수필가의 수필관은 《수필학 제12집》(한국수필학회, 2004)에 수록된 <우리 수필 무엇이 문제인가?>란 글에서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글에서 그는 “최근 많은 세월 동안 수필의 이론정립에 성행되었던 고정관념들을 깨버리는 게 우리 수필을 보호하는 길이라고 생각해 본다. 알게 모르게 우리 수필문단에 무슨 상투문구처럼 용인되어 온 이런 고정관념어들이 무엇 때문에 필요한지를 알 수 없다.”면서, 증오를 넘어 분노까지 일으킬 정도로 안타깝다고 피력한다. 그러면 그런 고정관념의 상투문구란 어떤 것인지 알아보기로 하자.
수필을 ‘관조의 글’이란 고정관념을 상투문구로 치켜드는데 수필이 사색이나 창조의 글로 못가거나 갈 수 없다면 이를 어찌하나? 수필을 ‘상상의 글’이라고 명명해 놓고서 수필의 허구성(fiction)을 전적으로 배제하면 무엇으로 어떻게 수필의 문학성을 꾀하려는가?
수필을 ‘일인칭의 글’ 또는 ‘자조의 글’로 치켜세우는 바람에 자조自照의 영역을 벗어난 수필이 사이비 글로 몰린다면 그 죄를 누가 지려는가?
수필을 ‘주관적인 글’ 또는 ‘개성문학의 소산’이라고 강조하는데 주관이나 개성이 배제된 객관성이 강한 몰개성적인 명작이 나왔을 때는 무엇으로 변명하려는가?
수필을 ‘광범위한 장르의 글’이라고 우겨대어 일기문, 여행기, 예찬글, 심지어 논설문까지 모두 수필이라고 한다면 수필의 예술성(문학성)은 어디서 찾으며 그런 따위의 글을 읽고 과연 문학성의 여운을 맛볼 수 있을까?
수필장르의 확대설인가, 축소설인가, 어느 쪽이 더 진정 우리 수필의 문학성 창달에 이바지할까?
수필의 서정성을 강조한 나머지 서정수필만을 하늘 같이 떠받드는데 서정수필 외의 수필은 전혀 감동을 주지 않는다는 그런 보장이 어디 있던가?
수필은 ‘사실적事實的인 글’로 치부하는데 수필이 창작품일진데 창조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수필정의에 대한 원의原義적 즉 실험적 창작이 어찌 나올 수가 있는가?
수필도 문학일진대 여타 장르에 영향을 입혀온 문학사조나 운동을 외면한다면 어떻게 유미주의唯美主義 수필작품이나 또는 이미지즘의 수필작품 등이 나올 수가 있을까?
이상 질문형식으로 타진해 본 질책이지만 도창회 수필가는 근래 유행하여 그 타성이 골수에 박힌 그런 고정관념의 상투문구들을 싹 없앴으면 좋겠다고 밝힌다. 왜 이런 용귀들이 우리나라에서만 또 우리 수필문단에서만 성행을 하는지, 근거를 댈 수 없는 공언空言들이 왜 난무하는지 통 모르겠다는 논지다. 그러면서 그는 이젠 수필의 문학성을 위하여 이런 고정관념의 상투문구들로부터 해방시켜 문을 활짝 열어야한다고 밝힌다.
그런 한편, 수필의 허구성 도입 여부에 관한 논란의 내용에 대해서도 도창회 수필가의 주관은 명백하다.
첫째, 수필에 거짓(lie)이 아닌 허구(fiction)를 도입함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수필에 허구가 들면 소설이 되어버린다는 염려를 강조한다. 과연 수필이 허구의 일부를 도입한다고 수필이 소설이 되던가? 그런 염려는 붙들어 매어도 될 것 같다.
둘째, 수필은 진실 된 글이라고 해서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허구(fiction)는 거짓말(lie)이 아니다. 거짓말은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것, 또 해서는 안 되는 나쁜 말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허구성이 바로 그런 뜻의 말인가? 그렇지 않다.
셋째, 허구를 배척하는 사람들은 “수필에 쓰여 지는 것은 상상이지 허구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왕왕 찰스 램의 작품 <Dream Children(꿈속의 아이들)>의 얘기를 허구가 아니고 상상이라고 둘러대는 것을 본다. 그러나 허구는 허구이고 상상은 상상이다.
넷째, 우리 수필문단 중 어느 수필단체의 세미나 모임에서 “수필은 사실적事實的인 글이며 허구가 도입된 글은 수필이 될 수 없다”고 단정 지었다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망발이다. “지구는 정지해 있다”고 재판장이 판결했다고 해서 지구가 돌지 않던가?
▣ 현대수필의 좌표를 제시하다
도창회 수필가는 또 《수필학 제12집》(한국수필학회, 2004)을 통해 ‘현대수필이 나아가야할 방향’과 관련된 메시지를 이 시대의 문인과 문학도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는데, 그 핵심적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수필작품은 어디까지나 재생적 상상(reproductive imagination)의 소산이 아니라 창조적 상상(creative imagination)의 소산이다. 코올리쥬가 말한 제1차적 상상(primary imagination)이 아니라 제2차적 상상(secondary imagination)의 소산에 해당된다. 즉 제2차적 상상이 창조적 상상이다. 시, 소설, 수필, 희곡 등 모든 장르의 문학작품은 한결같이 창조적 상상의 소산임은 말할 것도 없다. 수필을 혹여 사실적인 진실을 강조한답시고 수필의 픽션 배제를 들고 나오면 바로 재생적 상상이 아닌 창조적 상상의 재구성의 문학성을 잃게 될 염려가 있음을 알자는 것이다.
둘째, (尹五榮 선생이 말한 대로)수필이란 어떤 것이냐가 문제가 아니고 수필이 어떻게 해야 문학이 되느냐가 문제라고 한 말에 동의한다. 어떤 수필이 문학수필이냐가 문제인 것이다. 요새 와서 생활의 여적을 쓴 글들, 감성의 조각들을 모은 글들, 교훈 따위를 늘어놓은 글들, 자기 생활이나 인생타령을 쓴 글들을 또 어떻게 문학수필이라 일컫겠는가? 실로 심각한 문제이다. 어쩌면 수필의 범위를 극도로 좁힘으로써 오히려 문학수필이 나오지 않을까도 싶다. 자기의 체험을 문학으로 재승화시키지 않으면 결코 문학작품이 안 될 것이다. 거기다 자기만의 독창성(Originality)이 없으면 어떻게 우월하다 하겠는가?
셋째, 우리 수필, 아니 우리 수필장르도 다른 장르의 글처럼, 다시 말하면 시 장르나 소설 장르처럼 문학이론, 문학사조, 문학운동을 받아들여 그 이론, 그 사조, 그 운동에 입각한 수필작품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유미주의 시나 유미주의 소설이 있듯이 유미주의 수필작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서정시, 서정소설, 서정수필이 있는 거와 같이 상징시, 상징소설이 있다면 상징수필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전위수필, 이미지즘의 수필, 주지수필 등 문학사조나 문학운동에 입각한 작품이 나와야 하리라고 본다. 오늘날 적어도 문학지식이 다양한 작가들은 충분히 그런 창작품을 저작할 수 있으리라 본다.
넷째, 우리 수필문단에 대중수필이냐 문학수필이냐를 두고 논란을 거듭해 오고 있다. 어떤 이는 대중에게 잘 읽히는 대중수필을 쓰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우기고, 다른 한 쪽은 돈벌이가 안 되고 읽는 사람이 없더라도 진정한 문학수필을 써야 한다고 우긴다. 다른 장르의 문학에서도 문학의 대중성은 크게 논란이 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인류의 보고寶庫가 될 만한 작품이 처음부터 많은 독자를 데리고 태어나지 않았음을 상기해 주기 바란다. 더욱이 돈벌이와는 무관하다. 항상 양量보다는 질質이 우선하는 이치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다섯째,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또 있다. 우리 수필관과 서양 수필관이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 수필관은 대개 서정수필관을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 수필관은 유머수필을 좋아한다. 서양 수필은 유머나 위트가 없으면 수필 축에도 못 낀다. 그러나 우리 수필은 감성어린 서정수필에 반해 있다. 허나 어떻게 보면 서정수필만 고집하다가 한국적 수필이란 테두리를 영영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우리 수필이 세계성을 얻으려면 우리의 전통적인 수필인식이나 사고를 빨리 벗어나야 한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국부적인 발전만 꾀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리라. 이는 곧 한국 수필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여섯째, 또 현대수필에 문제가 되는 것은 시대성이다. “그 세대 작가가 쓴 작품은 그 시대성을 모면할 수 없다”고 엘리어트가 《전통론》에서 말한 바 있다. 그 시대 서정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셰익스피어 시대의 작가는 그 시대 서정으로 쓴 작품이 될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살면서 그 시대정신을 저버린 작품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작가의 작품은 작가가 산 시대와 환경과 결코 무관할 수 없음을 재천명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 수필도 시나 소설처럼 시대성을 외면해서 안 된다는 것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일곱째, 작가가 쓴 작품에 대한 작풍作風의 변신이다. 변신은 형식, 내용, 사상의 변신을 말한다. 우리가 목격한 바이지만 시인들은 자기의 작품에 끊임없이 변신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서정주 시인은 서정시 <국화 옆에서>에서부터 사물화事物化함으로 <冬天>으로 변신하고, 또 <화사>의 상징시로 몸을 바꾼다. 또 다시 그는 <신라초>로 영원과 진리에로의 회귀를 꿈꾼다. 이렇게 시인은 작품에 여러 번 변신을 해 가는데 우리 수필작가는 단 한 사람도 그의 수필작품에서 변신하는 걸 보지 못했다. 개인은 끊임없는 변신으로 개성 있는 명작을 남기길 바라마지 않는다.
여덟째, 영국 수필에는 Formal Essay(正隨筆)와 Informal Essay(非正隨筆)를 쓰는 작가가 따로 있는데 우리 수필계에는 인포멀리스트는 많으나 포멀리스트가 전혀 없다는 게 우리 수필계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격식을 갖추어 아주 길게 쓰는 철학수필, 곧 Formal Essay가 그리운 요즈음이다. 사고가 깊은 철인哲人들이 이런 긴 수필을 시도하면 좋을 것이다. 모두 사수필私隨筆만 쓰다보니 포멀 에세이가 없어 마음 한 구석 섭섭함을 금할 길 없다. 우리는 언제쯤 미국의 에머슨, 영국의 카라일 같은 포멀리스트가 나올까 감감하다.
아홉째,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말은 작가는 애오라지 명작名作을 남겨야 한다. 수필은 쓰되 수작秀作을 쓰려고 노력하다 보면 마스터 피스가 나올 수도 있다. 명작은 창조적 상상의 미적 형상화로 재구성된 문학수필을 말한다. 작가는 한평생 동안 한 편이라도 명작을 남기고 싶어 한다. 우리나라의 문인협회에 등록된 수필가만 해도 2,000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 많은 수필가들 중에 명작을 쓴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 끊임없는 노력으로 훌륭한 수필작품을 생산하여 자신을 빛내고 나아가 한국 수필문단의 획기적인 발전을 기해주기 바란다.(도창회, 《수필학 제12집》, ‘우리 수필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 수필문학사료의 금자탑, 《한국 현대수필문학사》의 저술
한국 현대수필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이상과 같은 명확한 좌표의 제시와 더불어 도창회 수필가는 또 “시는 울면서 들어가서 웃으면서 나온다는 말이 있고, 수필은 웃으면서 들어가 울며 나온다는 말이 있다”면서, 그의 저서 《한국 현대수필문학사》(신세림, 2004)에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특별히 피력하고 있다.
쉽게 수필창작을 시작했지만 날이 갈수록 창작이 어렵게만 느껴진다는 것은 남에게 공감을 얻는 작품을 쓰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우리 수필문단의 수확은 어디까지나 수필가의 숫자나 작품의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니고, 훌륭한 명수필의 숫자에 의거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가 수필을 써온 지 실로 오랜 세월 동안 해를 거듭해 왔건만 아직까지 별로 신통한 수필문학사 한 권이 보이지 않아 한스럽게 생각해온 터다.
상고컨대, 그 동안 ‘한국문학사’가 학자들에 의해 여러 권 저술된 바 있으나 번번이 그 속에 수필문학사만 쏙 빠져 있다. 詩史, 小說史, 戱曲史는 포함되어 있으나 隨筆史만 제외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주된 이유는 수필문학에 대한 자료를 구할 수 없다는 게 연구가들의 말이다.
이유야 어떠하든 문학사 전반에서 수필장르가 빠졌다는 것은 절름발이 문학사가 됨은 물론이고 또 수필을 창작하는 모든 작가들에게는 충격을 넘어 모멸이 아닐 수 없다. 바야흐로 수필의 문학사 정립이 시급한 차제다. 누군가가 맡겨진 어떤 의무감을 느끼지 않고 될 일이 아닐 성 싶어 필자가 나서본 것뿐이다.(도창회, 《한국 현대수필문학사》에서)
한편, 도창회 수필가는 《한국 현대수필문학사》의 서문에서 “수록된 작가가 400여명에 이르고 보니 그들의 창작집과 창작품이 워낙 방대해 그들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뒷날 비평가들의 몫으로 돌리고 다만 서지적書誌的 비평에 그쳤다.”라고 아쉬움을 표하였다. 그러나 한국 문단에 본 저서에 필적할만한 단행본 규모의 종합적 사료가 거의 없는 실정이란 점을 감안한다면, 본 저서야말로 한국 수필문학사료史料의 금자탑이 아니라 할 수 없을 것이다.
△ 월간 시사문단 2005년 4월호 수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