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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끝나지 않은 《방황의 끝》- 길항적 저항 정신의 발현과 그 구현 * / 안재동
Ⅰ. 들어가면서
나는 올해 봄부터 문학 활동 관련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안도섭 시인을 뵙곤 하였다. 그 때마다 불과 수십여 분 이내의 짧은 시간에 의례적인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그래서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다. 그의 문학 활동과 출간물에 대한 평론을 두 편 쓴 일도 있지만 그것은 그의 문력이나 작품들에 대한 일부분적인 탐구에 불과한 수준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는 1958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등단한 이래 이제 몇 년만 지나면 무려 반세기에 이를 정도로 꾸준히 문학 활동을 전개하는 셈이 된다. 그래서 그에 대한 궁금증도 대단히 크다.
아무튼, 이런저런 일로 그를 가끔 만나면, 그의 과거 문학관련 행보 등 사적인 차원에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없었을 뿐 아니라, 궁금증을 해결할 만한 분위기가 되지도 못했다.
그러다, 마침 ｢문학21｣ 2005년 9월호 권두대담(‘왜 서사시를 쓰는가? — 안도섭 시인에게 묻는다’) 현장에 참가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 때, ‘이 때다!’ 싶어 평소 관심을 가졌던 사항들을 몇 가지 질문사항으로 준비하여 슬그머니 질문을 던졌던 결과, 그 내용이 활자화되어 다소 도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내용만으로는 나의 관심사항이 충분히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의외로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다름 아니라, 그의 소설집 ≪방황의 끝≫(은혜미디어, 1996)을 탐독했기 때문이다.
≪방황의 끝≫은 올해 봄에 안도섭 시인의 사무실에 들렀다가 ｢문학21｣ 100호 기념 사화집詞華集 등 다른 두어 권의 책들과 함께 무심결에 받았던 것으로, 그의 단편소설집이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그 책은 당시에 내가 바로 읽지 못했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바쁘기도 하고 다른 데 신경을 집중했던 바람에 그 책은 책꽂이에 꽂혀 먼지만 폴폴 덮어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방황의 끝≫이 최근 다시 눈에 들어와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보니 그 속에 안도섭 시인의 초기 문학활동 관련 행보를 일부나마 ‘파악’할 수 있는 대목들이 발견되었다. 여기서 ‘파악’이란 표현은 실은 ‘짐작’ 정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적절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서전적 이야기나 마찬가지인 내용을 담고 있는 그 소설들이 그의 행보를 철저하게 소설 속에 묻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소설 속에 그가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기 때문에, 소설이란 문학의 영역 밖으로는 잘 노출되지 않는다고 할까.
가령, <죽음의 상자>란 작품 속에서는 ‘민혁’, <흰 바위산>에서는 ‘허윤석’, <여왕벌>에서는 ‘강범우’라는 인물을 설정해 놓고 그 인물들을 통해서만 자신의 행보들을 간접적으로 전달할 뿐이다.
시에서는 메타포를 매우 중시한다. 그러한 메타포의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소설 속의 그를 발견하기 어렵다. 그다지 오래된 일도 아니면서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내가 ≪방황의 끝≫을 건네받을 당시 안도섭 시인이 “그 책 속에 나의 과거 문학 관련 행보가 들어 있다.”고 말한 것을 얼핏 들은 적이 있기에, ‘아하 이 대목이 바로 그 부분이구나.’ 하고 느낄 수가 있었다.
안도섭 시인은 ‘서정을 바탕으로 역사와 시대에 항거한 문인’, ‘한용운, 김영랑, 이육사, 김광섭, 신석정, 윤동주 등과 같은 민족시인’, ‘자연의 생명력과 삶의 진실을 노래하는 서정시인’ 등으로 이미 세간에 잘 알려져 있는 유명한 시인이다. 하지만, 소설가로 통할 정도로 많은 소설도 창작했다.
≪한 잔의 찻잔에 별을 띄우고≫(1986), ≪책과 어떻게 친구가 될까≫(1993), ≪스푼 한 숟갈의 행복≫(1993), ≪문장작법 101법칙≫(1995) 등 4권의 에세이집도 출간했으며, ≪청춘의 역설≫(1981), ≪한씨一家의 사람들≫(1983), ≪암수의 축제≫(1985), ≪녹두ⅠㆍⅡㆍⅢ≫(1988), ≪방황의 끝≫(1996), ≪세월이 가면≫(1997), ≪김시습≫(1999) 등 7권이나 되는 소설집을 출간했으며, 최근에도 천상병 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단편소설인 <귀천의 새>를 발표(월간 ｢한국소설｣ 2005.10월호)하는 등 소설가로서의 영역과 활동을 여전히 유지해 나가고 있다.
Ⅱ. 안도섭의 문학 열정과 저항 정신의 개화
1. 고뇌하는 작가의 자서전적 기록
≪방황의 끝≫의 작가 안도섭은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의 창작집으로서는 이번의 ≪방황의 끝≫이 두 번째 소설집이 된다. 첫 번째의 ≪청춘의 역설≫이 빛을 본 지 15여 년이 흘렀다. 그런 의미에서는 남다른 감회가 없을 수 없다. 나는 본시 시인으로 더 알려져 왔던 탓으로 소설은 시에 가려져 온 것 도 사실이다. 하지만 수편의 장편과 현재 구상중인 대하소설이 이번 소설집의 발간으로 하나의 기폭제가 되어 집필의욕을 되살리게 된다면 더 없는 행운이 되겠다. 그만큼 마음 설레게 한다.”
이 대목을 보더라도 ≪방황의 끝≫은 안도섭의 소설세계에 ‘하나의 기폭제’가 될 만큼 그에겐 비중이 큰 작품집임에 틀림없다.
≪방황의 끝≫에 수록된 작품들은 대체로 세 가지의 경향을 띤다. <방황의 끝>, <첫눈 오는 날>, <첫사랑> 등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성모럴을 추구한 것이며, 두 번째의 <흰 바위산>, <여왕벌>, <용틀임> 등은 현실과의 괴리에서 빚어진 한 시대의 삽화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의 <황제 지오니 팡가레>, <열하일기>, <죽음의 상자>, <시인의 죽음> 등은 지난 시대의 반동적 군사문화에 대한 육탄적인 도전의 시도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상 이 소설집의 심장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으리만큼 그 무게중심을 지니고 있다 하겠다. 특히, <황제 지오니 팡가레>에서 보여주는 독재자에 대한 우화적이며 풍자적인 묘사가 독자에게 흥미의 깊이를 배가시키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무대, 즉 감옥이나 인물들은 소설적 구성에 따른 가상적인 존재들이 아니라, 작가의 직접적인 체험에 의해 설정되었다는 점에서 현장성과 역사성을 지닌다고 하겠다.
안도섭의 소설에서는 고뇌하고 저항하는 인간 군상群像들의 모습이 그려지면서도 그다지 무거운 긴장과 비정기 같은 무거운 분위기는 자아지지도 않는다. 그런 가운데서도 특정 사안에 대한 상황의 명확한 진술과 등장인물들의 심리적이고 철학적인 번민 등을 무리 없이 전달해 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10편의 단편소설 전편에 걸친 내용들이 사실적이고 기록적인 성격이 매우 강하다는 점이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한춘홍 교수가 36방에 있으니 통방을 해서라도 한번 추진해 봅시다.”
36방은 한교수 외에 네 명 중 K고의 심인섭군도 끼어 있었다. 심군은 K공원의 혁신계 통합대회 때 시낭송의 주선과 군중의 조직 동원을 했다는 혐의로 구속 중이었다.
K공원의 통합대회가 있기 십여 일 전 민혁은 오화백으로부터 시낭송 의뢰를 받았다. ‘오두막’ 그릴로 그가 찾아 갔을 때 민자통 J도 조직위원장인 오화백과 김창선 선전위원장이 마주 앉아 있다가 반색을 하면서
“그럼, 점심 들면서 얘기 나누지.”
“전, 함박스텍으로 하겠습니다.”
두 분은 이미 점심을 마친 뒤라 주스와 커피를 시켜놓고 있었다. 그가 식사를 하는 동안 오화백은 서울에서 혁신계 거물들이 내려오는데 K공원에서 열릴 혁신계 통합대회라며, 그날의 시낭송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를 민자통 문화부장으로 추천한 분이 오화백이어서 스스럼없이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는 낭송시를 쓴다는 약속은 했지만, 그날의 낭송 여부는 그때 가서 정하기로 하였다. J신문의 문화부 데스크를 맡은 그가 짬맞게 참석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전 10시의 대회장에 그가 참석할 수 없게 되자， K여고 문예 반장인 정혜련양이 그것을 맡기로 하였다.
구름의 떼처럼 모여든 군중들 앞에 대회 선언이 있은 후 그녀가 뽑아 대는 낭송시는 확성기를 타고 멀리 시가지를 메아리져 갔다.
— <열하일기> 중에서
문창살이 훤해지자 눈을 멀거니 떴는데도 민혁은 이불을 들쓴 채 일어날 궁리를 않는다. 한 손으로 그 수상쩍은 데를 만지작거리며, 도시 이 짓을 해가며 공상을 더듬는 것이었다.
도대체 아침마다 융기해 마지않는 이 성性과 간밤의 ‘죽음의 상자’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렇지, 성이 생명의 시원이라고 한다면 죽음은 생명의 단절이 될 터이므로 여기에는 뗄 수 없는 공리公理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죽음의 상자’를 그가 언제부터 의식 속에 간직해 왔는지, 그리고 그의 의식 속에서 떠나지 않는 전율할 강박감이란.
그 악몽, 질식. 그가 서대문 미결감에서 불기소 처분되어 고향에 내려 온 일주일 후부터 무서운 증세는 발작하기 시작했다. 그는 관棺과 같은 상자 속에 못 박히는 공포에서 소스라쳐 깨어나 살문을 박차고는 마루로, 이어 맨발로 마당을 대여섯 발자국이나 뛰쳐나갔다. 숨 막히는 의식의 밑바닥에서 해방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그것은 사면으로 싸인 감방의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려는 압박감이 죽음의 상자로 변용되어 꿈속에 나타난 폐소공포閉所恐怖, 구금拘禁노이로제 징후였다. (중략)
4ㆍ19의 새 기운을 타고 창간된 J신문사에서 일할 때 민혁은 도道문화상을 타는 등 일신에 영광이 찾아오는 듯했다. 그때 오화백이 심사위원장을 맡은지라 그들은 자별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장기 독재가 무너지고 세상은 바뀌었다. 민주화의 물결이 거세게 밀어 닥치고, 혁신계의 대두와 겨레의 통일운동도 봄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 것이었다. 이런 기운으로 전국에 민자통이 조직되고 오화백은 J도 조직의 중책을 맡았다. J신문사 문화부장 송민혁에게 민자통 문화부장을 맡게 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K공원에서 혁신계 통합대회가 거도적으로 열렸을 때 서울에서는 통사당의 고정훈 대표가 오고 사회당의 김철 선생이 연사로 나섰다. 고정훈 대표는 민주당 정권을 철학이 없는 ‘차차차 정권’이라 하여 시민의 박수를 받았고 김철 선생은 ‘민주화 시대를 우리 손으로 열어야 한다’며 시민의 정치의식을 드높이기도 하였다. 이 대회에 낭송할 축시를 송민혁에게 의뢰했던 것인데, 그는 자작시를 J여고 여학생에게 읽히게 하고 자신은 대회장에 나갈 수 없는 사정을 알렸었다.
이 대회장에서 낭송된 시는 장시 <누가 막을 수 있었으랴>로, 분화구처럼 터지는 4월 혁명의 불붙는 노래이었다.
민자통 J도 조직대회 때에는 바쁜 일과 속에서도 민혁이 모습을 나타냈다. 옥내외 대회장에는 이미 수백 명의 군중들이 운집해 있었다. 간단한 식순을 마치고 사회자의 소개로 오지우화백이 연단에 올라서자 사방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자그마한 키에 콧수염을 단 오화백은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첫마디를 힘차게 터뜨렸다. (중략)
그는 잠시 홍분을 가라앉히고 나니 광주 교도소에 갇힌 아버지 소식이 궁금해 졌다.
5ㆍ16이 나던 날 아버지는 한 고을 사돈네의 생일잔치 초대를 받고 참석했었다. 그날 잔치에는 열댓 명의 손님이 모여들었고, 지서에도 미리 이것을 알렸었다. 그런데 잔치 집에 온 손님들을 모두 잡아들인 것은 그날 초대했던 주인이 혁신계 인사였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정치집회로 보고 그들을 전원 체포, 포고령 위반으로 군재에 넘겼었다. (중략)
아침에 눈을 뜨니 꿈이 예사롭지 않았다. 고향집 뒷동산을 울타리가 삥 둘러 있는데, 난데없이 그 울이 와삭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꿈결이지만 대들보가 무너지는 듯한 허전함이었다. 그런 탓인지 버스에 올라 집에 이르도록 그는 을씨년스러운 기분을 떨치지 못했다.
아니나다를까 허겁지겁 집에 당도한 그는 아버지가 하루 전에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으나, 어머니를 위로하는 수밖에 없었다.
“걱정 마셔요. 아버진 정치하시는 분이 아니니까 무슨 탈이 있을라구요.”
경찰서에서 하루 이틀 지나면 풀릴 줄 알았던 아버지는 광주 구치소로 넘어가 그대로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러나 민혁에게도 위험의 순간은 각일각 다가오고 있었다. 시오리 떨어진 고모 집에 보름 남짓 도피처를 구해 있다가 귀가하던 날 그는 망보던 형사대에 의해 수갑을 채이었다. 서에서 조사받는 일 없이 그는 광주 구치소로 곧장 넘겨졌다.
— <죽음의 상자> 중에서
2. 암울한 현실 속에서 발현된 저항 의식
물살이 고인듯 안개자락 어린 이마. 그토록 고즈너기 자리한 백자 항아리는 그에게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이런 항아리를 만든 장인을 천대하고 홀시했지만 오늘날은 천고의 보배가 아니오. 선생도 고생이 자심한 모양이지만 굽히지 말고 정진하시오. 어디 고생 없이 큰 일이 이루어진답디까.”
이런 말 저런 이야기 끝에 같은 고향임을 안 한의원은 남다른 호의로 약을 짓고 위안의 말을 잊지 않았다.
윤석은 집에 돌아와서도 그 이조 백자의 아련한 빛과 어떤 책에서도 미처 대하지 못한 예술의 혼에 대해 색다른 감동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가 병상에서 일어났을 때는 한가위가 다가오고 있었다. 기나긴 여름해, 해바라기 순이 아이 키만 하던 게 어른 키를 굽어보면서 현란한 꿈을 익히는, 토실한 열매도 영그는 그런 상달. 윤석은 자신 앞에 다닥친 불운과 실의에 견디면서도 꿈을 앓지 않으려고 얼마나 발버둥쳤던가.
그 꿈의 요람지가 어두컴컴한 골방이요，흰 바위산의 아카시아 숲속이었다. 그는 새로운 작품 구상을 하느라 몇날 밤을 지고 새웠다．
— <암울한 현실> 중에서
앞서 언급하였지만, ≪방황의 끝≫은 표제작 <방황의 끝> 등 모두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지만, 책의 무게는 아무래도 <황제 지오니 팡가레>, <열하일기>, <죽음의상자>, <시인의 죽음> 등에 치중되어 있는 듯하다. 다른 작품들은 이 책에 있어선 일종의 소품 정도로 느껴진다면 작가가 저항시인이란 일반화된 이미지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필자의 편견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침 점호가 끝나고 음울한 생각에 견디다 못한 민혁은 불현듯 일어나 낙서로 얼룩진 담벼락을 서성거린다. 뭔가 남겨놓고 싶어 하는 인생의 흔적일까. 그 공백이란 공백에는 크고 작은 글씨로 꽉 메워져 있는 것이다. 1년에 한 차례 쇠붙이 따위로 이것을 긁어내지만 낙서는 좀처럼 지워질 줄을 모른다.
그리움과 애원이 겹친 말, 속박 속에서 동경하는 자유, 고통을 이겨내려는 의지의 발현으로 쓴 참을 인忍자 등이 그것이다. 이 낙서는 연필 꼬트리 아니면 손톱이나 사금파리로 벽에 파놓은 글씨들이다.
하많은 것 가운데 민혁의 발끝을 꿈쩍하지 못하게 한 문자는 <행복의 조건>이라는 다섯 글자였다.
<행복의 조건>
인간은 대체 무엇을 행복이라 하는가.
짐짓 시를 써온 민혁으로서는 이 문제를 수월히 넘겨버릴 수만은 없었다.
‘과연 물질적인 풍요만이 행복일까? 아니 명예나 지위나 권력이…… 아니다, 아니다…… 사랑을 갖는 자, 신념을 갖는 자가 행복한 자가 아닐까? 자신을 사랑하고 이성을 사랑하고 나아가서 겨레를 사랑할 줄 알아야 행복한 사람인 거다. 자유와 진리에 대한 신념 없이…… 그런 인간을 행복하다 할 수 있을까? 비록 내 여기 갇혀 있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조국의 내일을 믿기 때문에 불행할 수는 없다…….’
그는 넋두리를 뇌고 나서 문득 마음에 어리는 <자화상>을 읊조리고 있었다.
내가 나를 잃어버릴 때
내가 나를 잊어버릴 때
내 와 있는 곳을 알고 소스라친다
여긴 안톤 체홉의 7호실 같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몸서리치던
그 무덤 같은 유형지
—반국가행위자 표지가 붙은
8사 56의 미결감
나는 푸른 수의 입고 씁스레 웃는다
그토록
인간의 탈을 아주 벗은 자처럼
세계의 이단자처럼
철창 너머 보이는
빈 하늘 고달픈 넋 풀면
해는 또 노을에 잠기어
밤을 재촉하는 밤바람소리
침묵의 우리 속
나는 자꾸 마음 뒤설레는 것이냐
내 와 있는 곳을 묻기 전에
내가 나를 잊어버리자
내가 나를 잃어버리자
이런 암울한 나날이 가고, 더는 세계 여론에 견딜 수 없었던지 정치범의 석방이 있으리라는 소식이 온 감방 안에 퍼졌다. (중략)
한밤중 문득 잠이 깨면 온몸에 피를 빨던 빈대가 꺼끄럽게 기다 달아나고 부신 백열등 때문에 눈잔둥이 퉁퉁 부어올랐다. 한참 눈을 끔벅끔벅 쑴벅여 보지만 눈알이 아리고 가슴은 가위눌릴 뿐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엉뚱한 족쇄에 묶이고 있으니 앞날을 점치기 어려웠다.
이런 불안 속에서도 고향에 내려가 있을 아내와 아이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문득문득 쓰다가 두고 온 소설이 그리워지면 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만일 내가 살아 나간다면 펜으로 모든 것을 쓰고 말테다. 총칼로는 사람을 울릴 순 있어도 웃길 수 없다. 그러나 펜은 사람을 울릴 수도 웃길 수도 있다. 그래서 펜은 총칼보다 강하다 하지 않았는가. 너희 총칼로 이루지 못한 것을 꼭 펜으로 이루고 말 테다.’
그러면서 눈이 캄캄해지는 것이었다. 그는 소리 없이 울부짖고 있었다.
‘뭐, 평화통일을 부르짖었다고, 남북교류를 외쳤다고, 세상에 없는 법을 만들어 짐승처럼 우리 안에 처박아 두는 법이 어디 있어! 이런 날벼락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이냐? 같은 피를 이어 받은 민족이 민족끼리 화합하자는 것이 죄가 된다면 너흰 도대체 어느 나라 어느 겨레의 후손들이냐 말이다. 외국 놈의 발바닥이나 핥고 버터냄새에 코를 쑤셔 박는 못난 놈들!’
— <죽음의 상자>에서
안도섭 시인은 195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작품이 <불모지>였는데, 그 시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산천을 떠오르게 하면서, 그 참혹성에 도전하는 역사의식을 배고 있는 작품이다. 등단 이후 그는 <지도 속의 눈>, <풀잎 서장>, <지리산> 등 민족시 계열의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안도섭 시인은 1987년에 ≪어느 화형일≫(도사출판 청사)이란 5ㆍ18민주화운동 관련 시집을 출간한 바가 있는데, 그 시집은 72편의 저항시 계열의 시들로 엮어진 항간에 그리 많지 않은 5ㆍ18민주화 관련 작품집이다.
관련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지난 1990년 국민일보의 기사를 잠깐 살펴보기로 하자.
6ㆍ25이래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아픈 상처라고 일컬어지는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문학적 해석 및 형상화작업이 90년 들어 본격화하고 있다. 5공 독재정권이 5월 광주를 은폐ㆍ왜곡하던 80년대 초반에 시인들은 비극적 현장에서 피해자들의 원혼을 달래고 잔인한 폭력의 정체를 고발하는 시작들을 써냈다. 이 같은 시들은 수적으로도 미미하고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어느 누구도 광주를 들먹이지 못하던 시절에 역사적 진실의 일단을 알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소설분야는 85년에 들어서면서 5월 광주를 직접적 소재로 다룬 중ㆍ단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5ㆍ18 10주년을 맞아 기념시집 ≪하늘이여 땅이여≫, ≪아아, 광주여≫와 기념 소설집 ≪부활의 도시≫(인동刊)가 출간됐고 5ㆍ18을 정면으로 점검하는 서사시와 장편소설들이 집필되고 있는 등 총체적 형상화 노력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중략) 이같이 다양하게 형상화된 시작들은 87년에 간행된 5월 광주항쟁시선집 <누가 그대 큰 이름 지우랴>와 기념시집 <하늘이여 땅이여…> 등을 통해 종합 정리됐다. [<시ㆍ소설에 비친 ‘광주’(5ㆍ18 그 후 10년:4)>(국민일보, 1990.5.19, 이태희 기자)]
안도섭 시인은 ≪어느 火刑日≫을 출간할 시점으로부터 이미 10여 년 전엔 <황토현黃土峴의 횃불>이라는 동학혁명에 관한 대서사시를 써서 1978년 11월부터 ‘농민문화’에 1년 2개월 동안 연재하고, 1980년 4월 20일자로 240여 페이지에 이르는 단행본 장편서사시집 ≪황토현黃土峴의 횃불≫을 세상에 낸 바도 있다. 하지만 그 시집은 곧 신군부에 의해 판금조치를 받고 시중에 유통이 불가능하게 되고 말았다. ‘신군부에 의해 판금조치’를 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로 이미 안도섭 시인은 그 당시부터 저항문학 계열의 작가로 영원히 낙인이 찍히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황토현黃土峴의 횃불≫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안도섭 시인의 집념은 2002년에 와서야 결말을 보게 된다. <황토현黃土峴의 횃불>을 증보 발간한 대하서사시집 ≪새야 녹두새야≫(푸른사상, 2002)가 그것이다. ≪새야 녹두새야≫는 출간 해에 곧바로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우수문학예술 도서로 선정되었다.
안도섭 시인은 유년기와 소년기까지는 농촌에서 비교적 평탄하게 성장했지만 청년기 때 8ㆍ15와 6ㆍ25 등을 겪었고 특히 중학교 때는 여순병란이 일어나 그의 고장까지 밀어닥친 봉기군과 토벌대의 전투 장면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그의 또 다른 대하서사시 <섬진강 뱃노래>의 모티브가 그때 싹텄던 것으로 밝힌 적도 있다.
지리산에 풍운이 일어
1
스무하루 해 뉘엿뉘엿 질 때
허름한 작업복 걸친 웬 중년 사나이
한복 차림의 촌로村老 하나 데리고 동순천역 찾았다지
그 중년 남자는 뚜벅뚜벅
보초에게 다가와
별갑테 안경 속 번뜩이는 눈으로
― 이곳 사령을 만나러 왔소
나는 남로당 중앙의 노상명 이 라 하오
그 이름은 이 현상의 가명 이었으니
남부군 사령관 시절에는
노명선이라는 이름 쓰기도 하였지，
심마니 같이 따른 이는 남원군당 소속의 레포
— <섬진강 뱃노래>에서
안도섭 시인은 월간 ｢문학21｣ 2004년 11월호부터 2005년 5월호까지 연재를 완료한 대하서사시 <섬진강 뱃노래>에 이어 2005년 6월호에 시작하여 2005년 12월호에 마칠 예정인 대하서사시 <아, 삼팔선>을 연재 중에 있고, 제3부에 해당하는 <무기여, 안녕>을 2006년 1월호를 시작으로 2006년 7월호에 마칠 예정으로 있다. <섬진강 뱃노래>는 1948년 여순병란 때 여수 14연대가 봉기한 데서 시작하여 그들이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으로 활동하는 과정을 그린 내용이며 <아, 삼팔선>은 1950년 6월 한국전쟁 발발로 인한 민족비극이 시작된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또한 <무기여, 안녕>은 38선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휴전선의 의미와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들의 힘겨루기에 대리전 역할을 감당해야 했던 우리 민족의 비극과 그로 말미암은 남한 내 빨치산의 운명을 다루는 이야기가 된다.
<새야, 녹두새야>를 비롯한 이들 대하서사시들은 괴테의 <파우스트>란 작품만큼 그의 라이프 워크Life-Work로 평가되기에 손색이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등단 이래 지금까지 안도섭 시인이 발표한 대부분의 문학 작품들이 저항문학 또는 민족문학 계열이란 점도 특징이다.
다음에 소개되는 시는 1985년에 구상具常, 문덕수文德守, 박두진朴斗鎭, 신세훈申世薰 등 205명의 시인이 참가한 ｢현대시 205인의 축제｣(현대시인협회, 1985)에 수록된 그의 저항문학 계열의 작품이다.
얼룩진 역사의 뒤안길,
풀섶 기던 꽃뱀 한 마리
두 龜頭 하늘로 꾀고 꾀이어
이시린 독니
널름대는 불혀!
쌍두사雙頭蛇야,
해와 달 입에 물고
해골박 유형지流刑地 까무러치면
포성 울던 이 골
어둠에 죽은 재 뿌려
한무리 까마귀 떼 우짖고.
꿈틀한 새벽이면
용쓴 대가리 틀어 올라
서린 분노忿怒 쇠울 감아도
비린 몸뚱어리 비늘꽃 어룽져
시샘하는 넋신의 꼬리
악문 아가리
시시때때 파란 독침毒針 놓아
망나니 헐레붙듯
역사의 시울 휘감아 도는 쌍두사雙頭蛇야!
— 안도섭, <쌍두사雙頭蛇> 전문
3. 반동적 군사문화를 고발하다
안도섭의 단편소설 <시인의 죽음>이나 <열하일기〉, <죽음의 상자> 등에서는 5ㆍ16 군사정권에 의해 고초를 겪는 문인들의 모습을 실감 있게 묘사하면서 당시의 반동적 군사문화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그와 관련한 몇 대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K시의 명문 사학인 C대학이 P총장 일가족의 전유물로 떨어지려 할 때 일부 교수들은 학원의 민주화 요구를 하고 나섰다. 그들이 내세운 요구는 P총장의 이사장 겸직 반대와 학원 운영의 민주적인 개혁이었다. 학생 다수가 이러한 교수들의 주장에 동참해 나섰고， P총장 옹호파에서는 깡패를 동원, 이들과 맞서려다 피 흘리는 사태를 빚기도 하였다.
그 동안 학원 안팎에서 투석전이 여러 차례 벌어지고 이런 격돌이 끊이지 않다가 5ㆍ16후 주동 교수와 일부 학생들이 된서리를 맞은 것이었다.
민혁과 입씨름을 하는 김봉영 교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비아냥거리는 투로 중얼거렸다.
‘채！ 진보적인 교수들이 고작 저 모양이니……. 그런 나약한 지식인들이 민중을 이끌고 교육 혁신을 이룬다는 것은 연목구어야. 관념만으로 진보를 믿고 혁신을 꾀하자는 지식인, 창백한 브나로드들이여!’
그는 김교수에게서 창백한 인텔리의 전형을 보는 느낌이었다. 민혁은 C대학 5회였기 때문에 1회인 김교수와는 선후배 관계요, 문학을 통해서도 낯선 사이가 아니었다. 김교수는 고전과 한문을 강의했지만, 민혁은 J신문 기자인데다 시인으로도 알려져 유명세가 붙어 다녔다. 고시 합격자를 여럿 낸 지방의 C대학이었지만 문단 등장은 송민혁이 효시인 셈이다. 민자통의 혐의로 수감된 지 예니레를 맞고 있었다．
이 37 감방에는 모두 5명이 수감되어 있는데, 박병홍은 역시 C대 경제학 교수요, 외팔이 김연하는 통사당 혐의였다. 판사 출신인 추진수 변호사는 혁신계 법률 고문을 맡았던 사람으로 좀 색다른 인물이었다.
계엄 아래 무더기로 사람을 가둬 들이는 판이라, 좀 난 사람치고 형무소 신세 지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중략)
K시의 구치소에는 혁신계 인사들이 연일 쇠고랑을 차고 왔다． 인원의 폭증으로 이 형무소 안에 정치범을 비롯한 국사범의 취조반이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대학 교수, 법조인, 학생, 전직 도의원, 기자 할 것 없이 유치장은 가득 찼다. 자신들이 잡혀온 법조문을 몰라 간단없이 억울하다는 호소였다.
— <열하일기〉중에서
광주의 붉은 벽돌담에서 무덥고 긴 여름을 갇혀 있던 민혁은 초가을께 그곳 33인의 미결수들과 서대문 형무소(후에 교도소로 바뀜)로 이송 되었다.
그들이 서울역에 내렸을 때는 땅거미가 짙게 드리운 저녁이었다. 광주의 유폐생활이 도리어 그리워지도록 혹종의 단절감이 마음을 무겁게 가위 눌렀다.
“여러분을 잠시 후 서대문으로 옮기고 우리는 돌아갑니다. 한 가지 당부해 둘 것은, 감방에 들어가더라도 허튼 말을 삼가시오. 그런 언동은 본인은 물론 모두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잊지 마시오.”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가 반갑다던가. 그 형사는 고향 미결수들을 위해서 한마디 당부를 잊지 않는 것이었다.
‘아, 감방 안에도 정보기관의 손이 뻗쳐 있구나!’ 민혁은 속으로 경각심을 높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서대문 미결감의 입소 수속을 마치고 각기 배정된 감방으로 들어설 때는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그 지하실 콘크리트 계단을 내려서면서 민혁은 불현듯 도스토예프스키의 시베리아 유형지를 떠올렸다.
인간의 극한 지역!
그가 지하실 계단을 내딛는 발은 천근의 무게 그것이었다. 아니, 그의 의식을 짓누르는 것은 자신들의 앞날을 점지할 수 없는 그런 불안의식이었다. 4ㆍ19 후 민주당 정권 아래서 합법적으로 결성 조직된 혁신계 및 민족자주통일연맹이 소급법으로 날벼락을 맞아 서울에까지 이송되고 있으니 전혀 앞날을 가늠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는 반항의 소리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 <죽음의 상자> 중에서
야구 선수 출신인 김악은 쾌활하고 사교적인 성격이었다. 게다가 그와 마주한 손님은 낯선 사람이 아니고 간혹 이 술집에서 눈이 마주치던 인물인지라 그는 술잔을 권하며 입을 방긋거린다. (중략)
이튿날 밤 주태백酒太白이 시인은 옆구리에 원고뭉치 하나를 끼고 간밤 곤드레가 되도록 마신 맥주홀에 모습을 나타냈다. 미리 와 있던 그는 반색을 하며 시인에게 자리를 권한다. 그리고 일찌감치 맥주 파티가 벌어졌다.
“오늘은 마음 노시고 드시구려, 난 선생의 시를 감상하겠소이다.”
그는 대학 노트에 박아 쓴 시를 몇 편 읽어가다가, 이해가 안 되는 구절이랄지 외래어가 나오면 시인에게 일일이 설명을 들어가면서 내용을 파고들었다.
이렇게 노트를 훑어 내린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어깨를 으쓱거린다.
“선생의 시를 읽으니까 나도 절로 사회 정의파가 되는 것 같군.”
그런데 그의 비아냥거리는 웃음에서 일순 서슬 같은 것을 의식한 시인은 속으로 아차 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평옥씨는 여기까지 이야기를 털어놓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참 순진하고 어리석은 친구였어. 글쎄, 자기 심장까지 빼준 친구라니까."
“예술의 순교자 김 악 시인이 그래 어떻게 되었어요?”
나는 갑자기 미궁에 빠져든 듯한 심정에서 캐어물었다.
“그 길로 곧장 행방불명이 되었다가 옥사를 했다지 않아.”
“김 악 시인이 옥사를 했다고요?”
나는 도시 그 말이 믿어지지가 않아 분통을 터뜨렸다.
— <시인의 죽음> 중에서
Ⅲ. ≪방황의 끝≫의 문학적 가치와 특징
안도섭 소설의 특징은 이야기 전개와 문장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특정 테마나 사안에 대해 굳이 해설하려 않는다. 문제를 굳이 제시하지도 않고 읽다 보면 문제가 무엇인지 해결점이 무엇인지, 사안의 인식과 귀결점이 나타난다. 굳이 독자와 더불어 풀고 모색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작가의 의도를 굳이 노출시키려 하지도 않는다. 오랜 시 창작기법 때문인지 이야기의 전개가 복잡하지도 않고 특정 상황에 대한 설명도 간단명료하다. 문장에 나타나는 표현법도 비교적 단순하다. 그만큼 독자로 하여금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내용에 대한 이해를 쉽게 만든다.
또한 여느 소설처럼 현란하거나 기교적인 표현을 구사하지도 않고 절묘한 클라이막스의 연출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상과 같은 점들이 ≪방황의 끝≫에 수록된 10편의 작품들에서 관찰되는 형식적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한편, 내재적 특징으로 가장 두드러진 점은 우리네 정서의 보편성과 소박성에 근저한 전통적 도덕관과 휴머니즘 정신이 넘쳐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방황의 끝≫에 수록된 작품 전편에 걸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문학적 가치를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1. 풍자ㆍ해학 문학의 진수
안도섭 시인의 시편들은 현실 저항적 인식이 강하게 표출된 체제 저항적인 작품들에서도 서정성을 바탕으로 상징, 풍자, 알레고리 등의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비판의 강도를 조절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백수인 교수, 조선대 신문, 98.5) 특히 5ㆍ18 광주항쟁 관련 그의 저항시집 ≪어느 火刑日≫에 담긴 여러 시편들에서 풍자ㆍ해학적 메타포가 매우 탁월하게 구사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중 한 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태생이 어디냐고,
남녘 외진 개땅새라네
왜정 때
설움 받던 닭띠 태어나
보리피리 불고
진달래나 씹고 살았지예
화약냄새 자욱한 안개
비리 붙는 것들 싫어
청하늘 우러른 한글주의자 라네
허면 잘못이 있다고,
허허, 과녁으로 뚫어보지 마오
창밖 드맑은 눈으로 아침에 서오
뭘 빈정대느냐고,
그래, 늬들 잘난 세상이니
개똥벌레에도 슬슬 기어나 살지
— 안도섭 시, <고문 받던 날> 전문
<황제 지오니 팡가레>에서는 지난 시대의 반동적 군사문화에
대한 육탄적인 도전과 독재자에 대해 풍자적으로 조소ㆍ비난하고 있는데, 그 풍자ㆍ해학적 묘사 기법이 아주 탁월하다. 이는 특히, 5ㆍ18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하는 그의 저항시집 ≪어느 화형일≫에서 두드러지게 관찰되는 일부 시편들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한 풍자ㆍ해학적 기법이 <황제 지오니 팡가레>에서 그 극치에 달하고 있다.
아틀란티스의 지하국가 미스터리컬은 인구 5천만을 헤아리는 민주공화제 국가인데 요근래 제국帝國으로 정체가 바뀌었다. 그것은 민선 대통령에서 일약 황제로 둔갑한 지오니 팡가레의 대권에 의한 것이었다. 그만큼 국민의 반발이 드세었고 지식층과 야당 세력의 그것은 여간 만만하지 않았다.
“짐 지오니 팡가레의 업적은 훗날 역사가 그들을 판가름할 것이다. 정권욕에 사로잡힌 야당 당수 이사와 폰다, 그리고 야인으로 제국 헌법에 묶여 있는 빈 키오케, 이런 무리들의 농간이 더 이상 이어질 줄 아는가? 어림도 없다. 더 이상 그놈들을 놓아두지 않을 테다!”
밤늦게 술기운이 돌자 황제 팡가레는 관저의 넓은 홀 안을 휘청거리며 횡설수설 늘어놓는다. 그 모습은 마치 시정배의 그것과 같아서 황제의 위엄 따윈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날도 몇몇 각료와 정보대장 슈밀 도르프를 불러 험궂게 돌아가는 정치정세를 보고받은 그는 그 살기 찬 권력에도 어떤 한계를 느낀 탓인지 안절부절 못하면서 혼자 혀꼬부랑 소리로 지껄여댔다. (중략)
“하하하…… 국민의 지탄이라구요? 지레이 선생, 선생은 이미 칠순을 넘으신 분입니다. 이 마당에 국민의 지탄 따위가 뭐 그리 대단합니까. 국민이란 현명한 것 같지만 매우 어리석은 존재란 것도 아셔야 합니다. 왜 그따위에 귀를 귀울입니까? 국민이 선생더러 배반자라 할까 싶어서. 개뼉다구라 할까 싶어서. 조금도 개의할 것 없어요. 황제께서도 말씀하시듯이, 후세의 역사가가 오늘의 경제적 도약을 대서특필할 것이요, 제국헌법의 역사성을 곱게 평가할 거외다. 그런데 뭐가 두렵긴 두렵습니까, 선생!”
도르프는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이따금씩 교활한 웃음을 헤뜨리는 것이었다. (중략)
국민들은 차차 그의 본질을 꿰뚫어 보게 되고 그를 밉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절대권력은 나날이 살쪄가기만 했고 비밀정치는 미스터리컬의 전 국민을 한 손아귀에 거머쥐게 되었다．
그러한 노권력자에게 어느덧 정치는 시들해졌고 이제는 불노장생주와 미희가 곁에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술맛 나게 어서 부르려므나.”
“소녀 부르겠습니다.”
하고 미리노는 자세를 고쳐 서서 그녀 특유의 애릿한 몸짓을 해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왜 못나 왜 못나
잘나라면 잘나보라지
흥흥흥 잘나보라지
말솜씨도 근사하게 지껄이라지
지위영화 마음대로 누려보라지
흥흥 멋들어지게 잘나보라지
천하대권 한 손으로 휘두르라지
남아일생 사는 보람 찾아보라지
흥흥 시큰둥히 잘나보라지
(중략)
도르프는 어느새 쌍발 권총을 손에 들고 신들린 사람처럼 외쳤다. “이 수중궁의 경계에 임하되 개미새끼 하나 이 곳을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하라. 이것은 정보대장 아니 미구에 천하대권을 쥘 절대자 슈밀 도르프의 언명이닷! 알겠느냐, 즉각 행동으로 옮겨 가랏!”
“하지만 연회석엔 지엄하신 황제께서 납시었는데…….”
수석 비서가 영문 몰라 물었다.
“하하하…… 이 순간부터는 지엄하신 황제는 이 짐이야…… 하하하하.”
한동안 어리둥절해 있던 국원들이 눈을 휘둥그린 채 서로 얼굴을 번갈아 본다.
“그대들은 무엇을 주저하는가. 잘 들어두라. 이 지엄하신 황제 아랜 그대들이 차지할 비서장과 정보대장의 대권이 기다리지 않는가. 우리 앞에는 이제 아름다운 미희와 달디 단 꿀과 마법의 수중궁이 기다리고 있는거다.”
“넷!”
하고 일동이 외치자 그것을 신호로 도르프는 그들의 맨 앞에 서서 집무실을 요란히 달려 나갔다.
— <황제 지오니 팡가레> 중에서
2. 시와 소설의 융합적 쟝르, ‘시소설’의 추구
소설집 ≪방황의 끝≫에 수록된 단편소설 10편중 대부분의 작품에서 군데군데 시가 나타난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시로 함축하여 나타내고 있는 점이 본 작품집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우리 문학사에 그리 흔치 않게 발견되는 현상으로 시와 소설이 융합된 새로운 개념의 시소설로 분류하고 싶다.
러시아 작가 뿌쉬낀의 ≪예브게니 오네긴≫과 같은 시소설은 형식상 장편 서사시 형태를 취하지만 내용상 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방황의 끝≫은 서사시가 아니란 점에서 그와는 다르다고 하겠다.
≪방황의 끝≫에서 보여주는 안도섭의 이러한 창작기법은 대하서사시 ≪황토현의 횃불≫의 작품구조와도 연관성이 커 보인다. 서사시 창작기법이 이미 작가의 몸에 배인 점도 같은 맥락이려니와 말하고자하는 내용을 시로 표현할 때의 그 함축성과 경제성을 중시한 결과로 보인다.
내가 공시인에게 마음을 태웠다면 그건 무엇일까? 수수한 남성의 멋, 혹은 남자의 정열, 혹은 시인의 혼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시인의 명성에 매혹되어서일까?
이런 생각에 잠기면서 그녀는 자신의 감상여행이 언제쯤 끝날지 전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문득, 밤 여행을 노래한 시 한 구절이 파도처럼 일렁여 왔다.
새벽 첫 시간에
창가의 자리에 앉은
나그네는
눈을 비벼 잠에서 깨어
큼직하고 짤막한 손가락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빗어 넘기고
하품을 하고.
— <방황의 끝> 중에서
철이가 사라지고 나서 그는 접어둔 책장을 펴 다시 글줄을 읽어 갔다. 잠시 읽어 내리다가 문득 시상이 떠오르면 연필을 꺼내어 자잘한 글씨로 그것을 적어 내린다.
그는 <여름풀>을 홍얼거리고 있었다.
하잘 것 없는 풀잎이지만
가슴 훈훈한 향기여
이 모진 목숨
네게서 무얼 배웠느냐
나와 키를 겨루다
별보곤 소곤대는 이야기
비바람에 쓰러지다가도
등 일으켜 꼿꼿이 서는 의지
한포기 풀잎은
아침 구슬을 단다
— <흰 바위산> 중에서
눈보라가 몰아치는 무악재 고개를 넘어 홍제동에 이르자 차에서 내린 나는 집을 향하는 동안 혼잣소리로 뇌까리고 있었다. 그리고 집에 이르러 파랑새처럼 날아가 버린 시인의 유고 한 편을 꺼내어 소리 없이 읽어 내린다.
창밖의 눈보라는 더욱 세차게 휘몰아쳤다.
시제는 <소왕국>.
네가 여기
온 것은,
네가 여기
온 것은,
전라도 가시네야.
댕기 길게 따 느리우고.
네가 여기
온 것은,
아 봄 따라 온 거냐.
눈에는
핏자국 같은
눈물 자국이여.
외마디 말이 있을까.
벙어리 되었느냐.
하여
공양미 삼백석에 왔느냐.
공양미 삼백석에 왔느냐.
일부다처一夫多妻의 나라
이 무스타의
소왕국에
네가
온 것은……
— <시인의 죽음> 중에서
구름의 떼처럼 모여든 군중들 앞에 대회 선언이 있은 후 그녀가 뽑아 대는 낭송시는 확성기를 타고 멀리 시가지를 메아리져 갔다．
우리는 한몸 되자꾸나，
백두산 쑥닢 뜯고
동방의 빛 찾은 길손이어늘
눈과 눈은 눈 기리며
손과 손은 손 반기어
어둠 지우고 일어서는 새 아침
꽃봉오리 웃는
저 하늘 멧새들도
그날의 기쁨 환호하리니
남녘 끝
한라산 발목 휘감아
찰랑대는 바다 물결 거친데
우리 한몸 되자
우리는 한마음 되자꾸나
백두에서 한라산까지
하나의 소망으로만
굽이쳐 달리는 한 핏줄이 아니냐
(중략)
‘자유’가 무엇인가? 왜 나는 여기 숨쉬고 있는가? 그래, 자유를 얻으면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그토록 간절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진실인가? 사랑인가, 조국의 통일인가? 아니, 아니, 예술의 혼인가?‘
그는 미여질 듯한 생각에 절로 노래를 흥어리고 있었다.
그 애처로운 달맞이꽃
창살에서 굽어보는 노랑―꽃이여
눈 감으면 스며드는 그리움
벗도 고향도 어려 피었구나
이 얽매인 여름 한 여름밤을
그 아리따운 달맞이꽃
슬그미 훔쳐보는 바늘―꽃이여
붉은 담 드리운 무등의 그리메
꿈도 이슬도 어려 피었구나
이 얽매인 여름 한 여름밤을
그 인정스런 달맞이꽃
가슴으로 품어보는 아련―꽃이여
오는 날 호수의 여린 꿈결 위
시도 소망도 어려 피었구나
이 얽매인 여름 한 여름밤을
(중략)
이런 증상의 빈번한 발작으로 외팔이는 끝내 병동(病棟)으로 옮기고, 한춘홍 교수가 전방해 왔다. 그는 C대학 강의를 나가다 총장 반대파로 몰려 들어온 시인 지망생이었다. 그래서 민혁과는 좋은 말상대가 되어 주었다. 무덥고 지루한 여름의 권태를 잊기 위해 문학 방담은 묘약이 될 수 있었다.
산 너머, 고개 너머
먼 하늘에
행복은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아, 나는 남 따라
찾아 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돌아왔다네
산 너머, 고개 너머
더욱 더 멀리
행복은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 <열하일기> 중에서
대구의 박시인과는 지면이 두터운 편은 아니었다. 자유당의 부패를 시로 꼬집고, 서민의 애환과 배고픔을 <보리고개>로 써낸 저항시인의 한 사람이다. 검은테 안경에 수염을 텁수룩하게 기른 박시인은 그때의 옥중시를 이토록 애절하게 써냈다．
거꾸로 거슬러
어느적부터 비롯된
5월은
포악한 유형의 계절이었더냐
싸늘하게 못박힌 채
녹슬어만 가는
잿빛 시공을 더듬고
덧없이 윤회하는
욕된 화신(花信)아
십오 척 깎아 자른
삭막한 나무 가지에
점고하는 천성(天聲)이 피맺혀
지친 수심(囚心)을 달래려는가
전전하는 꿈결에
어뉘의 사무친 자장가 가락여
(중략)
마룻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으면 무릎이 시려오고, 등골이 쑤셔온다. 민혁은 이때 불현듯 <죽산새>를 흥어리며 절절한 심정을 달랜다.
겨 결 겨결겨
울어라 새 원한의 새야
피맺히도록 울어라 새
어느 하늘 땅 위에
푸른 꿈 낙원을 세우고
그래도 사무친 한이 있어
서대문 철창에 나래 파득여
하늘 검은 날 와 우는 새
원한의 새 죽산새야
아침과 저녁이면
형장의 이슬밭에 남긴 유언
지저귀며 지저귀며
울어라새 영험의 새야
무악재 바람 불면
또 저 하늘 눈물 쏟아질라
겨 결 겨결겨……
— <죽음의 상자> 중에서
3. 배경ㆍ인물의 명징明澄성과 사료史料성
안도섭의 소설에서는 등장인물과 장소를 익명匿名으로 처리하는 현상이 뚜렷하다. 이는 이야기에 대한 현장성과 감흥을 떨어지게 하는 점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독자로 하여금 개별적 상상력을 발원케 하여 이야기의 공간적 넓이와 깊이를 확장시키는 측면이 있다 하겠다. 이와 관련한 몇몇 대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 교수는 지난 선거 때 회장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경력이 있는데, 그때의 회장 당선자는 2대에 걸쳐 펜을 이끌어 온 탓으로 출마를 않게 되고 고 교수와 또 한 사람의 J 작가가 대결할 것으로 문단가에는 풍문이 돌고 있었다. 고운삼 교수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판이 날 만큼 집념이 드센 노력형으로, D대학원 원장직을 맡고 있었다.
그는 문단 섹트에 의한 세 확장과 H 시인협회 등을 발판으로 문단정치에 맛을 들이고 있다는 세평도 나 있는 인물이었다.
— <방황의 끝> 중에서
얼마 전 여의도에서 있던 T문학상 시상식에도 임향숙은 참석했었고, 장민우는 주최측 주간으로서 심사 경과를 발표했었다. (중략)
A문학사의 진회장과 만나기로 한 장민우는 두 시 약속시간이 지났는데도 진회장이 나타나지 않자 먼저 커피를 시키고는 훌쩍이고 있는 중이었다. (중략)
그녀는 임향숙으로, A문학지에 수필로 데뷔한 신인이라고 소개를 해 주었다.
— <첫눈 오는 날>에서
K시의 명문 사학인 C대학이 P총장 일가족의 전유물로 떨어지려 할 때 일부 교수들은 학원의 민주화 요구를 하고 나섰다. 그들이 내세운 요구는 P총장의 이사장 겸직 반대와 학원 운영의 민주적인 개혁이었다. 학생 다수가 이러한 교수들의 주장에 동참해 나섰고， P총장 옹호파에서는 깡패를 동원, 이들과 맞서려다 피 흘리는 사태를 빚기도 하였다.
— <열하일기〉중에서
위 <방황의 끝>에서 관찰되는 ‘J작가’, ‘H시인협회’, ‘D대학원’, <첫눈 오는 날>에서 ‘T문학상’, ‘A문학사’, <열하일기>에서 ‘K시’, ‘C대학’, ‘P총장’ 등 어쩌면 실제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는 대상에 대한 익명 처리는 그로 인해 소설의 묘미를 더 살리려는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한다. 이와 같은 익명 처리는 10편의 작품 전편에서 군데군데 나타나고 있다.
반면에 등장인물과 지역 등을 실제 존재하는 이름으로 아주 정확하게 표현한 경우도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다.
이렇게 숙덕이던 중 인솔 교도관이 다가와 큰소리로 제지하는 바람에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호송차 안에서 또 눈짓 손짓을 해가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박지수朴智帥 시인이 경북 민자통 관계로 8사 안에 와 있다는 것을 알고 적이 놀랐다. (중략)
죽산새는 죽산竹山의 새라 하여 ‘죽산조’라고도 일컫는다. 이 새는 교수대의 이슬로 사리진 죽산 조봉암으로부터 유래되었다. 그가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까지 감방 안에서 참새를 길렀다는 이야기는 교도소 안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는 끼니때마다 밤톨만큼 콩보리 밥을 떼 내어 철창가에 올려놓으면 한 쌍의 참새가 날아와 먹고 가곤 하였다.
죽산이 갇혀 있던 2사 15방에서의 일이다. 그토록 참새를 극진히 사랑했던 그는 죽어서 새가 되었다는 것이다.
죽산이 가고서부터 이 교도소 안에는 전혀 듣지 못한 새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흐린 날이나 비 오는 날 밤 이 죽산새 소리를 들으면 잠을 설치기 일쑤다.
— <죽음의 상자> 중에서
그의 서사시집이 나올 무렵 궁정동 사건이 터지고 계엄령이 선포되었을 때다. 계엄령하의 검열을 받기 위해 그는 가제본 두 권을 들고 시청에 마련된 검열실로 향했다. 스산한 분위기가 감도는 검열실에는 검열 신청을 받는 아가씨 두 명과 검열관들이 줄줄이 앉아 단행본을 훑어내리고 있었다．
“검열 받으러 왔습니다.”
“이리 책을 주세요.”
아가씨가 요구하자 그는 책 두 권을 내민다. 그녀는 책을 받아 체크를 하더니 이번에는 검열관한테 책과 체크 용지를 넘긴다. 검열관은 이것저것 훑어내리더니
“이건 무엇에 대해 쓴 것입니까?”
“동학농민전쟁을 소재로 했습니다"
“동학란을 쓴 서사시는 <금강>이 있죠?”
“네, 신동엽이란 시인이 내었지요.”
그는 조심조심 말했다. 적지 아니 떨렸다. 그것은 이 작품이 판금중에 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시인이 살아 있을 때 그와는 자별한 사이요, 서로 공감했던 탓으로 <금강>을 들먹일 때부터 움츠러들었던 것이다. (중략)
그러나 그는 아무 대꾸 없이 마루를 내려 아까 왔던 아카시아 숲길로 다시 발길을 떼어 놓았다. 울적한 심정에 옛 친구들이 문득 떠올랐다.
‘동엽이는 판금이 되고, 관식이, 봉우, 상병이는 시를 쓰다 머리가 돌아버리지 않았느냐!’
— <흰 바위산> 중에서
위 <죽음의 상자>에서 ‘박지수朴智帥’와 ‘죽산 조봉암’, <흰 바위산>에서 관찰되는 ‘<금강>’과 ‘신동엽’은 이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작품과 작가이고, ‘봉우’, ‘상병’ 등은 ‘박봉우’ 시인과 ‘천상병’ 시인으로 당시의 실제 인물들이다. 특히, 신동엽과 박봉우는 안도섭보다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한 두 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당선된 관계로 서로 그 사이가 막역했었고, 천상병 시인 또한 매우 가깝게 지냈던 사이로 알려지고 있다. 월간 ｢한국소설｣ 2005.10월호에 발표된 안도섭의 단편소설 <귀천의 새>에도 천상병 시인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와 관련한 대목이 다음 이야기에 나타나 있다.
천상병은 서울 상대를 스스로 그만둬 버렸다. 반년만 더 다녔어도 졸업장을 쥐고 큰 은행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가 4학년 1학기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학장은 그를 학장실로 불러 의외의 격려를 해 주었다.
“군은 지금도 시를 쓰고 있나?”
“네, 가끔씩요….”
“시인의 길이 가시밭이라고 하는데 열심히 하게나. 그런데 말야, 우리 상대는 5등 안에만 들면 한국은행에 특채로 들어가게 돼. 졸업 때까지 열심히 하게나.”
그런데 그 학장은 그에게서 어떤 예감을 받고 그를 특별히 불렀던 것일까. 그때 이미 그의 뇌리 속에는 자진 퇴학의 싹이 움터 있었다. 졸업을 한 학기 남겨 놓고서 말이다.
그에게는 시인 이상의 훈장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인의 월계관, 그 하나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중략)
한때 문단은 ‘모나리자’파니, ‘문예싸롱’파니 두 갈래로 갈려 있었다. ‘모나리자’파는 조직을 갖지 않은 자유분방한 예술가들인데, 이들이 ‘동방싸롱’으로 떼 지어 옮겨온 것이다.
쓰디쓴 얼굴로 김승호, 이해랑 등이 진을 치고 앉아 있으면 명동백작 이봉구를 비롯한 문인 패거리들이 이 곳을 들락거렸다. 박인환이 바람같이 왔다 바람같이 사라지면 부리부리한 눈을 굴리며 김수영이 낯선 소녀를 데리고 와 이 다방의 구석차지를 하고 앉는다.
그 무렵 모윤숙, 조연현이 펴내던 <문예>는 문을 닫고, 문총 기관지격으로 모윤숙, 김광섭은 <자유문학>을, 조연현은 <현대문학>을 새로 창간하게 된다. 종로 5가 효제 초등학교 뒤쪽에 자리한 ᄃ교과서의 한 부서로 <현대문학>은 창간되어 문단의 구심점을 이루었다. 초창기 멤버는 조 주간, 오영수 편집장, 박재삼 기자, 김수명 경리였는데 ᄋ기자가 새로 입사, 박재삼을 도왔다. 심부름하는 심양까지 6명의 팀웍을 자랑했다.
이 잡지에 글을 쓰는 문인들이 갈채다방으로 모이고, 소설의 제왕 김동리를 비롯하여 손소희, 한무숙, 강신재, 박용구, 추식 등 내로라는 작가들이 진을 치고 있으면 조 주간은 큰 봉투를 옆구리에 끼고 토끼 걸음으로 찾아들고, 박화성 같은 대가 옆에 신진작가 박경리는 얌전히 앉아 차를 마시곤 하였다.
빨간 넥타이를 맨 서정주는 거므티티한 얼굴에 대낮부터 얼큰히 취해 중년 여류와 콩팔칠팔하다가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중략)
시집 한 권 없이 저 세상으로 간 천상병 — 이 한 마디가 씨가 되어 민영이 그의 흩어진 시들을 모으기로 하고, 성 모가 출판을, 손 모, 김 모가 뜻을 모아 그의 유고시집을 내기로 하였다.
마침내 선을 보인 유고시집〈새〉는 4×6 배판 자주색 표지에 금박 양장의 초호화판 시집.
이 시집이 나오자 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 새가 날아왔다. 어디로 날아갔는지 어느 하늘가에서 외롭게 숨졌는지 5개월 동안 잠적했던 <새>의 시인 천상병 씨가 병상 위에 나타났다. 서울 응암동 시립 정신병원 1병동 2층에서 간호원이 꽂아 준 링겔만으로 병든 몸을 달래며 외부인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병실에 누워 있는 천씨의 병명은 ‘알코올에 의한 정신적 황폐증’—
밤마다 침대 위에서
“친구들이 보고 싶소.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소. 글을 또 쓸 수 있을까요?”
하고 시인은 눈시울을 적셨다.
그러니까 그의 유고시집이 도리어 그의 생존을 알려준 기이한 인연이 된 것이다.
— <귀천의 새> 중에서
이상과 같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나 무대 혹은 배경이 실명으로 명징하게 진술되고 있다. 군데군데의 대목에서 발견되는 그러한 명징성은 내용에 대한 기록성과 사료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 하겠다. 한국전쟁이 무대가 되고 있는 <첫사랑>을 살펴보기로 한다.
삼팔선을 넘은 국군과 유엔군은 불같은 기세로 북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렇게 별 저항 없이 평양을 점령하고 북진해 간 국군 제1사단은 그런데 더는 전진할 수 없었다. 운산 북쪽 온정(溫井)에서는 날이 샐 무렵 제10, 제19연대가 중공군의 기습을 받고 차량과 대포를 모두 버리고 물러났었다.
이때 함흥까지 진출한 유엔군의 알몬드 소장은 원산으로 돌아와, 제8군의 우익이 붕괴된 것을 알고 제1해병사단에게 북상을 명령했다. 이미 제24단의 전면에는 중공군 제50, 제60군이 대기하고 있었으며, 운산을 제39군이 포위할 뜻으로 그 좌측에 제38, 제40군이 국군의 제2군단을 뚫고 청천강 골짜기로 쳐들어 오고 있었다．
중공군의 총공격일은 11월 l일로 잡혀 있었다. 미 제1군은 박천―용산동―영변선에 정비를 한 후 중공군의 총공격이 있기 전에 퇴각을 하기 시작했다.
11월 13일 영하 10도의 겨울 날씨였다．
송시륜(宋峙輪) 장군이 지휘하는 제9집단군은 이미 10월말에 전투에 참가하여 이때는 제20군이 유담리, 제27군이 장진호 동쪽, 제26군이 후방 배치를 완료한 상태였다. 이 집단군은 조랑말과 소달구지, 낙타 등에 총기를 싣고 흰 겨울산을 진군해 온 것이다. 소총 탈환도 80발로 제한되고 식량도 압록강을 건널 때에 쌀, 보릿가루, 콩을 4일분 지급받았지만, 이후엔 현지에서 해결하고 솜털의 방한복과 콩기름으로 추위를 견디면서 운산을 진군해 온 것이었다.
미 제10군단의 정면, 제1해병사단의 정면과 제7사단의 우익인 산속에 대군은 복병으로 숨을 죽이고 대기하고 있었다. 솜털의 방한복은 안이 흰색인지라 그것을 뒤집어 입으면 그대로 겨울산에서는 보호색이 된다. 미 제17연대가 11월 19일 갑산을 점령하고, 그 중 제1대대는 다음날 혜산진에 진출했다. 이어 제2대대도 이곳에 진출했다. 장병들은 강변에 모여 압록강을 바라보았다. 강 건너에는 산봉우리에 흰 눈을 인 백두산이 우뚝 솟아 있었다.
강변에 이르렀을 때 한 미군 병사가
“이 작은 강이 압록강!”
하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자 한 장교가 나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는 마지막 지점까지 온 거야. 이제부터는 싸움을 거두고 정치가들이 나서서 해결할 차례지.”
그들이 신기한듯 바라보고 서 있는 곳은 압록강의 원류로 고작 50여 미터의 강폭인데, 양쪽 강변이 얼어붙어 중심부는 2미터 가량의 강물이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마지막 목적지 압록강을 향해 죽음의 순간순간을 겪으면서 이곳까지 진격해 온 것이다. 하지만 승리감도 잠시, 그들은 덧없는 생각에 젖어 들고 있었다. 이러한 유엔군의 승리 뒤에 큰 덫이 도사리고 있음을 안 것은 그 뒤의 일이었다, 난데없이 성천(成川)에 밀려 든 중공군은 맹호와 같은 기세로 눈덮인 적유산맥에서 달려 나왔다. 성천은 평양 동동북 50킬로의 요지로, 강동을 거쳐 서남진하면 평양에 이르고 남진하면 경의선을 제압할 수가 있었다.
이때 중국은 26개 사단을 전선에 투입하고 20만 이상의 병력을 만주에 대기시켜 놓은 상태 였었다.
중공군이 원산을 점령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평양도 곧 쳐내려 온다는 풍문이 한입 건너 떠돌고 있었다. 이런 소문을 듣고 온 아버지는 소정을 안방에 불러놓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금 중공군이 벌떼처럼 밀려 온다는데 너는 서울로 가 있어야겠다.”
“아버지, 어머니는 어떻허시고요?”
“우리 걱정은 말고 늬나 피신할 생각을 해.”
“그래도 같이 있고 싶어요. 같이 떠나시든지요.”
— <첫사랑> 중에서
4. 성性 모럴과 현실 괴리에 대한 담론적 접근
작가 안도섭은 소설집 《방황의 끝》에 수록된 단편소설들 중 <방황의 끝>, <첫눈 오는 날>, <첫사랑>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성性 모럴을 추구한 것이며, <흰 바위산>, <여왕벌>, <용틀임>은 현실과의 괴리에서 빚어진 한 시대의 삽화라고 밝히고 있으나, 그 내용을 헤집어 봐도, 최근 범람하는 말초적이거나 무분별한 애정행각 같은 통속적인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방황의 끝>을 비롯한 대부분의 작품들의 소재나 배경이 문학과 직간접으로 관련되고 있는 점이 그렇고, 치정 등을 통한 극적인 긴장감이나 갈등 혹은 반목을 조성하는 대목도 없다. 그야말로 순애보純愛譜적 사랑 식의 순백의 언어로 성性 모럴을 그리거나 보통 사람들의 세계에서 보통 언어로 우리네 삶 속에 읽힌 현실적 문제들을 접근해 나가고 있다.
“인생은 죽음과 부활의 연속인지도 몰라요. 지난날을 미련 없이 지우세요. 그리고 눈부신 부활의 아침을 꿈꾸어 봐요. 그러한 변신을 통해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세요."
“거기에는 아직 용기가 미치지 못해요, 선생님."
“그런 점에서는 버지니어 울프가 단연 돋보여요. 그는 여류작가의 조건으로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고 권했어요.”
“저도 공감해요."
"지숙씨는 구심이 없는 방황에 이제 종지부를 찍으세요."
그녀는 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지 맥주잔을 연거푸 기울이고 있었다.
“그만 일어납시다. 술에 인생을 맡기는 것도 용기 있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니깐.”
“공선생, 우리 어디로든 걸어요.”
맹하의 부축으로 두 사람이 거리로 나오자 밤하늘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선생님, 첫눈이 와요!”
“이 밤의 눈은 흰빛 언어구려.”
“별이 숨은 밤, 제 보석은 어디서 찾지요?”
“보석이란 얼어붙은 꽃, 그건 가짜 꽃에 지나지 않아요.”
“제게 핀잔을 주시는군요.”
“아니, 진실을 말하는 거야.”
“진실은 악마의 얼굴을 붉힌다고 했어요.”
“그럴 수도 있을 테지.”
“우리 UFO를 타고 어디든 날아가요."
“UFO는 인간의 환상이 만들어 낸 하나의 동화예요.”
“동화가 없는 나라는 황량해요.”
“동화는 인생을 미화시키는 힘을 가졌으니 그럴 테지.”
“답답한 세상, 동화 속에서나 살아요.”
“오늘밤 지숙씨는 멋진 시인이야!”
“공선생은 시인이 아니세요?”
“글세, 시 하나 외어볼까?”
“좋아요. 외어 보세요.”
둘이서 덕수궁 돌담을 거닐고 있을 때 맹하는 자작시 하나를 소리 내어 외었다.
— <첫사랑> 중에서
S뉴스사에서는 그녀가 상무직일 뿐 모든 일을 전결로 끝내고 사장은 허울이나 다름없었다. 주간지를 한답시고 반년여에 수억을 까먹고 말았으니 사장은 빈껍데기가 되고, 그녀가 긁어모은 돈으로 회사를 운영해 가는 속사정 때문이었다. 말단 사원을 채용하는 데서부터 국장급의 봉급을 책정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기실 박순녀의 생각대로 집행되었다.
그녀의 별명이 ‘여왕벌’ 이라고 난 것이 그런 연유 때문이다．
범우가 S뉴스사에 나가고 보름 남짓 지났을까. S뉴스사의 <사실>지를 맡은 조항래 부장과 박상무가 티격태격 신경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까닭인즉 <사실>의 표지를 인기배우로 등장시키려면 진행비조로 기십만 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요청에 대해 박상무는 단호히 잘랐다. 그러니 두 사람 사이가 원만할 리 없고, 조부장은 부원 네 명과 짝짝궁이 되어 회사와 아웅다웅하는 입장이었다. 이것을 눈치 챈 박상무는 조부장 선배 되는 포르노 작가 김숭녕을 부장으로 데려온다는 소문을 사내에 퍼뜨려 조부장이 스스로 자리를 물러나도록 분위기를 만든 것이었다.
— <여왕벌> 중에서
Ⅳ. 마치면서
≪방황의 끝≫에 수록된 여러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점은 소설 작품에서 흔히 나타나는 몽환적 신비주의, 즉 근원적인 인간의 고통과 고뇌라든가 꿈을 꾸다가 간신히 잠을 깬 뒤 꿈에서 느꼈던 그런 신비스런 기분 같은 것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또한 공간 구조의 다층화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만큼 이야기들이 대부분 현실적이고 구성이 복잡하지 않다.
또한, 지나치리만큼 재미를 추구한다든가 초월적 종교의 세계 혹은 현실세계와 이상세계의 대립적 갈등 구도는 더더구나 아니다. 또한 육체와 정신, 삶과 죽음, 순간과 영원, 그리고 예술과 삶 사이에서 생성되는 인간존재의 근원을 파헤치는 관념적이거나 철학적 접근 방법도 쉬 발견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의 소설적 성찰과 그 표출하는 형태가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그 자신의 자서전적 이야기조차도 가장 소설다운 소설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 외의 여러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우면서도 다름없음에도 역시 가장 소설답게 이야기로 풀어나가고 있다.
안도섭의 문학세계는 장르상으로는 시와 소설로 대별할 수 있고, 내용 및 성격상으로는 민중문학 내지 저항문학 계열에 해당한다. 특히, 그의 시는 서정시 계열이 대부분이고 그 서정성을 바탕으로 많은 저항시 계열의 작품들을 많이 발표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방황의 끝≫에 수록된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그의 문학 활동 초기의 주위 환경의 암울함과 수난의 여정이 그의 문학세계에 큰 영향을 준 듯하다.
그는 1978년 ｢농민문화｣에 대하서사시 ≪황토현의 횃불≫ 발표 이후, 1980년 4월 20일자로 240여 페이지에 이르는 단행본 장편서사시집 ≪황토현黃土峴의 횃불≫을 출간하였으나 당시 신군부에 의해 판금조치를 당했다가, 그동안 일부 증보 과정을 거쳐 2002년에 ≪새야 녹두새야≫로 제목을 바꾸어 출간하기도 했다.
그 뒤, 역시 대하서사시인 <섬진강 뱃노래>와 <아, 38선> 등 분단 상황의 아픔을 그려내는 민족문학 계열의 작품들을 연이어 발표한 사실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분명한 것은 시에 나타나는 그의 작품세계나 소설에 나타나는 그의 작품세계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한편, 안도섭 시인만큼 서사시를 질적 양적으로 다작한 작가는 우리 문단에서 찾아보기 아마 어렵지 않겠는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학세계와 작품에 대한 연구가 아직 그다지 활기를 띠지 못한 점이 마냥 아쉽다.
하지만, 그의 문학이 언젠가는 우리 문단과 문학사에 우뚝 설 날이 오게 될 것으로 감히 예견하면서, ≪방황의 끝≫에 대한 평가를 마감하고자 한다.
* 월간 <문학21> 2005.11월호에 문학평론으로 수록
* 계간 <대한문학세계> 2006.봄호에 문학평론으로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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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일리아스’ <황토현의 횃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