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불 * / 안재동

상록의 송림, 짙은 수풀 사이
파도처럼 출렁대는 산새들의 은빛 노래
늘 신에 젖은 꽃들의 푸른 언어
나무 가지가지 지문을 묻히고 다니는
아기 다람쥐의 재롱, 모두 일순(一瞬)
거세게 휘몰아친 붉은 바람에 사라졌다

기계에 의해 순간적으로 껍질이 벗겨져
알몸이 되어버리는 밤송이처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산

반란은 지진처럼 예고 없이 들이닥친다
밤 까는 기계에 늘 반란 당하듯
순간적으로 껍질 벗겨지는 수많은 밤송이
밤송이 같은 산들

사람은 혹한의 한겨울이 되고서야
추위의 무서움을 알고
알몸이 되고서야 옷의 필요성을 느낀다

자연에 대한 모반 세력들의 끝없는 준동으로
옷 같은 산, 산 같은 옷이
밤송이 까지듯 벗겨지고 있다
바로 이 순간에도

* 격월간<문예비전> 2005년 7·8월호 수록


별이 되고 싶다	안재동	05·12·03	3574	44
음지의 들꽃처럼	안재동	05·12·03	3194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