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머니의 밭 * / 안재동

할머니의 텃밭은
겨우 여남은 평 남짓밖에 안 되건만
쪼그려 김매시는 뒷모습은
넓은 동해바다에 뜬
자그만 목선 같다
저 밭을 언제 다 매실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만
밭이랑 사이를 배회하다
무차별 쏟아지는 햇살로
할머니 손등이며 목덜미를
온종일 쉴 새 없이 찔러댈 것이다

척박한 삶의 연륜에 부대껴
지문마저 닳아버린 손에
꽁꽁 쥐어진 낡은 호미는
할머니의 오랜 전우, 생의 동반자
나무 등걸같이 딱딱해진
할머니의 손마디가
어린 손녀 잠재우듯
이랑을 쉴 새 없이 토닥인다

할머니의 밭에선
일과표란 것이 오래전에
흙 속에 파묻혔고
그런 밭은 라디오조차 없는
할머니의 열악한 공장
산새 들새 풀벌레들이
할머니의 친근한 라디오

할머니께서 언제나 하시는 말씀
"우리 채소밭은 왜 이렇게 작을까?"

*계간<풍자문학> 2005.여름호 수록
*공저<풍경 밖의 풍경>(현대시인협의회 제9사화집) (2004.12)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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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안재동	05·12·03	3419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