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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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안재동  | 2012·08·31 20:11 | HIT : 3,200 | VOTE : 90
* 벌초 *  /  안재동


평소 잘 모르던 너와 내가 마주 하였구나
난 널 베어 쓰러뜨려야 하고
넌 태풍에도 지진에도 절대 넘어지지 않아야
우주를 바라볼 수 있는 존재

때론 시인들이 생명의 가르침으로,
아름다운 서정의 대상으로 예찬하던 널
여기 부모님이 누워 계신 대여섯 평 남짓
이 공간에서만큼은
난 널 일격에 제거해야만 한다

너와 나 사이엔 작은 철조망조차 없구나
널 보호할, 날 말릴 그 아무도 없구나
내 손에 들린 육중한 기계의 예리한 칼날에
넌 곧 순식간에 쓰러질 것이다
어찌하여 우리가 이곳에 이렇게 섰나

난 이 순간만큼은 시인이 아니라
오로지 전사일 뿐이다
널 신속하게 뿌리조차 제거해야 성에 찰
무자비한 투사일 뿐이다
결코 감상에 젖어선 안 될 또 다른 나일뿐이다
방패도 없는 약자 앞의
고성능 병기(兵器)일 뿐이다


*《월간문학》2012년 9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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