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우개 * / 안재동

지우개는
불필요한 글씨나 얼룩을 지운다
지우면서
자신도 작아진다
작아지면서
끝내 사라진다

자신을 사라지게 하지 않으면
다른 것을 지울 수 없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그렇게 지우고, 지워져 간다
지우개처럼,

촛불은 자신을 사라지게 하면서
주위를 밝히지만
그 영롱함을 지우개에 비하랴

지우개는 다만
다른 존재를 지우고 사라져갈 뿐

사람들은 지금껏 아무도
지우개를 찬미하려 하지 않았다
촛불만큼,

*계간《문예운동》2011.가을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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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물	안재동	10·08·25	5078	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