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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소묘 * / 안재동
겨울의 형상은 마치
예리하고 번쩍이는 칼을 잡고
하마처럼 커다란 콧구멍을
징그럽게 벌쭉거리는
육중한 검은 괴물과 같다
그 형상에 위축되면
단칼에 베여 쓰러질 것이다
괴물과 전쟁을 치르기 위해
사람들은 저마다 두꺼운 양말과
두툼한 외투를 입고 부츠를 신는다
겨울이 옆구리에 차고 온
살상용 세균 주머니를 터뜨리기도 하는데
세균에 감염된 사람들은
마스크를 하거나 해독제를 먹는다
결국은 목숨을 잃기도 한다
겨울은 나무와 식물들의 수액조차
흐르지 못하게 하여
나무를 꺼스레하게 말린 다음
옷을 발가벗긴 채로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는 정말 싫증 나는 괴물이다
그런데
겨울이 가지고 오는 선물도 있다
세상에 잔뜩 쌓여 있는 더러운 모습들을
어깨에 메고 온 눈으로 한꺼번에
덮어버리기도 한다
새하얀 눈송이가 펑펑 쏟아지면
마음 설레는 사람들이 많다
시인이거나 시인이 아니거나
겨울만 되면
그리움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을
저마다 함지박만큼씩 쏟아낸다
겨울은 사람들을
따뜻한 곳에 오붓이 둘러앉게도 하고
서로 도란거리며 정을 나누게 한다
사랑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겨울에 많다
*월간<문학21> 2005년1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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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