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다, 그 삶의 원천적 힘 * / 안재동
인간의 신체 부위 중 어느 한 곳도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지만, 그 중 입이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입으로 음식을 먹고, 맛을 느끼며, 또 맛이란 걸 알기에 술과 담배 등 온갖 기호품을 찾게 된다. 그렇듯 입의 용도는 우선 먹으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입으로 음식을 먹으면서 입의 외형이 거의 변형되지 않게 오물오물, 아주 예쁘게 혹은 젊잖게 먹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남이 보거나 말거나 입을 마구 실룩거리며 먹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음식을 씹는 소리가 전혀 나지 않게 조용히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쩝쩝하고 소리를 내며 먹는 사람들도 있다. 또 음식만 보면 배가 터져라 하고 한정 없이 먹는, 식탐이 있는 사람들이 있고 먹는 데 대해서는 아주 초연한 사람들도 있다. 먹을 때 나타나는 입의 모양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사랑을 받기도 하고 때론 미움을 사기도 한다. 가령, 젊은이들이 어른들 앞에서 혹은 여자는 여자답게(남녀평등 사회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혹은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누구든지 소위 ‘양반처럼’ 먹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음식을 먹는 모습의 다양성과 중요성만큼이나 입으로 말하는 모습과 그 내용도 각양각색인 듯하다. 어쩌면 입의 먹는 기능보다는 말하는 기능이 중요성으로 치면 그 도가 훨씬 더 클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바로 그 입 때문에 남으로부터 사랑을 받거나 출세하는 사람도 있고, 때론 입 때문에 남으로부터 미움을 받거나 아예 망하거나 죽음의 길로 접어드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는 속담도 있지만, 그러한 속담이 생기게 된 연유는 바로 그런 점에 있지 않은가 한다.
우리가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하는 경우를 두고 흔히 수다를 떤다고 한다. ‘수다’라는 키워드로 네이버 검색창에서 조회를 해 보았더니 2005년 8월 현재 웹페이지가 81만 7천여 건이나 검색되고 카페가 980여 개, 블로그가 14만여 개나 발견되었다.
카페의 경우 그 이름도 ‘은밀한 수다’, ‘꿀맛 같은 수다’, ‘진짜 맛있는 수다’, ‘상큼한 수다’, ‘행복한 수다 떨기’, ‘용기 있는 사람들의 수다’, ‘양떼들의 수다’ 등 아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사람들이 수다를 떤다는 것은 하루 세 끼 식사를 하는 것처럼 습관적이기도 하고 정형화된 일상사와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 만큼 수다는 사람들에겐 오랫동안 몸에 밴 습관 또는 성격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다를 많이 떠는 사람을 보고 수다쟁이라고들 말하지만, 말이 많다고 해서 본인 스스로가 수다쟁이라고 인정하는 경우는 좀 드문 것 같다. 화자의 입장에선 아무리 말을 많이 해도 그것은 쓸데없는 말이 아니라 꼭 해야 할 말을 할 뿐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어느 카페에선, 한 네티즌이 “수다 떨 때는요, 자신의 실수 경험담이나 황당했던 사건들을 말해주면 정말 재미있어 해요. 아니면 말이라도 많이 해요. 썰렁해도 그걸 이미지로 잡으시던가요. 그러면 어느 샌가 정말 재미있답니다. 그리고 자신을 좀 낮춰 말하는 것도 재미있답니다.”라고 수다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눈길을 끌었다. 수다방법론이야 어디 그 뿐이랴.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대화의 대부분은 아마 수다에 해당되지 않을까 한다.
수다를 주제로 한 책도 서점가에 적지 않게 나와 있다. ‘수다가 사람 살려’, ‘과묵한 남편 수다쟁이 아내’, ‘실버들을 위한 유쾌한 수다’, ‘꿈꾸는 수다쟁이 마놀리토’, ‘스마트한 여자의 유쾌한 왕수다’, ‘임금님과 수다쟁이 달걀 부침’, ‘에바 페론과 E-mail 수다 떨기’, ‘수다쟁이 임금님’, ‘킬러들의 수다’, ‘그래, 수다로 풀자’ 등 제목도 다양하고 그 속에 수다만큼 재미가 충만 되어 있을 것만 같다.
직장인들의 경우를 살펴보자. 남성들은 남성들대로 여성들은 여성들대로 업무적이든 사적이든 끝없이 어떤 이야기들을 직장 내 여기저기서 주고받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대화 속엔 때론 업무적인 이야기보다는 사적인 이야기가 훨씬 많이 포함된 경우도 있다. 분명한 것은 업무적인 이야기든 사적인 이야기든 사람들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말을 많이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볼 때, 수다야말로 바로 우리네 삶의 일상 그 자체요 원천적 힘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개의 직장에서 실지로 그렇겠지만, 의사소통이 충분하고 원활해야 직장 분위기가 살고 업무능률이 오른다는 말이 있다. 말주변이 없거나 말을 적게 하는 사람은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 수도 있고, 심지어 왕따까지 당할 수가 있다. 당사자 스스로도 아마 소외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어떡하든지 서로들 말을 잘하고 또한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말 많이 하는 것이 체질이 아닌 사람들도 무슨 말을 하든 떠들 땐 떠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사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람은 대체적으로 누구로부터 관심을 사기도 어렵고 인기도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몇 사람이 함께 있는데 서로들 말이 없다면 그 얼마나 어색하고 서먹하겠는가.
나의 경우도 말을 잘하는 사람, 특히 말을 재미있게 하여 남들의 주목을 받는 사람 앞에선 개인적으로 열등감을 느낄 때가 가끔 있다. 나는 말을 가급적 아끼는 편이고, 누구보다 먼저 화두를 꺼내거나 남들보다 말을 더 많이 하려고 애쓰지도 않을뿐더러, 무엇보다도 남들보다 재미있게 말을 하는 편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다’라는 속담과는 달리, ‘웅변이 금이요, 침묵은 은’이란 생각을 가질 때가 종종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경우가 특히 그러하지만, 사람이 많이 모인 자리에선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대체로 인기가 있고 리더의 위치를 차지할 확률이 높다.
단 두 사람이 만났을 땐 말을 잘하건 못하건 어떤 화제에 대해 서로의 견해를 거의 공평하게 주거니 받거니 하게 되지만, 세 사람 이상만 모이면 그 중 한 사람 아니면 두 사람이 집중적으로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다. 대여섯 명 이상이 모여 이야기할 땐 한 두 사람 정도는 거의 말도 못하고 내내 자리만 지키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과 내의 시간 혹은 일과 외의 동료 몇 사람 혹은 친구들 간의 술자리나 기타 공식적인 회식자리에서 시종일관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이 많다는 것만으로 수다스럽다고 단정 짓긴 어렵지만, 대개 모임의 자리란 기본적인 식순을 마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야기가 서서히 사적으로 흘러가기 마련이고 그 때부턴 대화가 수다의 형식으로 변하게 된다.
1차 기본 회식 자리가 끝나면 다른 자리로 옮겨서 2차 자리를 만들고 또 다른 자리로 옮겨 3차 자리까지 가는 경우가 직장인들에겐 다반사이다. 그럴 경우 시간적으로 보면 대개 저녁 여섯 시 경부터 시작하여 새벽 두세 시 경까지도 흔히 이어지게 된다. 그러니까 몇 사람이 3차까지 간다고 가정할 때 무려 8시간 이상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계속 수다를 떠는 셈이 된다. 무슨 할 말들이 그리 많기에 그럴까 싶을 때도 있지만, 사실 그런 현상은 우리 주위에 비일비재하다.
나는 통상 회식자리에서 1차만 끝내고 빠져나오는 편이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에는 3차까지 따라 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척 피곤함을 느낀다. 나는 주로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편인데, 이야기의 주제나 내용이 재미있거나 무슨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어서 아주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경우가 많다. 다 아는 이야기, 특히 정부나 정치인 혹은 직장 상사 등 남을 험담하거나 비판하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하고 또 하는, 그런 수다를 반복적으로 들어주어야 할 땐 정말 고역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직장 생활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수다의 시간들을 일상적으로 즐기고 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아마 수다를 통해서라도 일과 중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면 그건 어쩌면 보약과 같이 몸에 좋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수다에 있어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있을 수 있을까. 수다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누구나 일상적으로 취하게 되는, 우리네 삶의 일부가 아닐까 한다.
아무튼, 업무상의 회의석상이든 술자리 같은 개인적 자리든 대체적으로 이야기의 주도권을 쥐는 사람이 한둘쯤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럴 때 그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다른 사람에게는 말할 기회를 주지도 않고, 계속 혼자 신나게 떠드는 경우도 많이 접할 수 있다. 수다를 떨 때도 예절과 남을 배려하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고 본다. 자신을 자제할 줄 알면서 남에게 말할 기회를 자주 부여하는 자세가 앞설 때 수다는 수다로서의 아름다운 모습과 가치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그런 바탕하의 수다문화가 적극 조성될 필요가 있고, 그러할 때 수다는 비로소 우리네 삶의 원천적 힘으로서의 모습을 간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의 대화는 의미 있는 대화보다 수다가 더 가치 있었다.”라는 ‘유브 갓 메일’이란 영화의 한 대목을 상기하면서, 수다의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가끔 되새겨 보자.
*월간 <스토리문학> 2006.2월호
*계간<e-수필> 2006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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