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나의 희망입니다 * / 안재동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 쯤 가보기를 희망하는 인도네시아 발리란 곳은 매우 인기가 높은 관광지이긴 하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 구분이 없다. 그곳엔 연중 내내 여름만 있을 뿐이다. 그런 반면, 알래스카나 그린란드 등 북극 지역에선 연중 내내 겨울만 있다. 그러기에 그곳 주민들에게는 계절 감각이란 것이 있을 리 만무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참 행복감에 젖곤 한다. 각종 꽃이며 초목들이 일제히 생명을 터뜨리는 봄, 푹푹 찌는 가마솥 안에 있는 것 같지만 세상만물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여름, 무르익은 곡식과 과실들로 풍성함이 느껴지는 가을, 삶에 지친 마음을 새하얗게 씻을 수 있는 함박눈 내리는 겨울이 우리에겐 늘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우린 겨울엔 언제나 따뜻한 봄이 어서 찾아와 줄 것을 희망하고 여름엔 선선한 가을이 빨리 와 줄 것을 또한 희망한다. 우리는 그렇게 사계절의 변화 같이 당연히 올 것이 오는 것에 대해서도 희망이란 것을 갖게 된다. 때론 가뭄 때문에 기우제를 지내거나, 굿판을 벌이는 등 야단법석을 떨 때도 있는데, 그럴 땐 희망의 강도가 매우 높아진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희망을 걸게 되는 일이 어디 그런 경우뿐이겠는가. 자식은 부모가 모쪼록 무병장수하시기를 희망하고, 부모 역시 자식들이 성공해서 행복하게 살게 되기를 희망한다. 사업가들은 자나 깨나 돈을 많이 벌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적든 많든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어떤 것에 대한 희망을 우린 평생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기도 하지만 참으로 나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폭설이나 홍수 등 대자연의 변화 앞에서 혹은 호랑이나 곰 등 맹수 앞에서 한 개인의 힘은 참으로 무력할 수밖에 없다. 직장에서의 과중한 업무나 대인간의 충돌, 혹은 가정의 일상 같은 일에서도 우린 쉽게 부러지거나 쪽박처럼 깨어진다. 때론 너무 쉽게 좌절하기도 한다.
만일 우리가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을 강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은 아마 희망을 가지는 일일 것이다. 희망은 병든 환자에게는 저항력이 되고 건강한 사람에게는 보약이 된다.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해 쉽사리 포기하거나 아예 절망에 빠져들 때가 많지만, “다 잘 될 거야.”라든가 “나를 구해줄 누군가를 만나게 될 거야.” 하는 등의 희망이 떠오르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끝없이 자신의 마음속에 살아 꿈틀거리게 되는 그런 희망! 그것은 아마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한다.
아주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한 번 생각해 보자. 바다에 조난당한 사람은 자신의 근처로 지나가는 배가 있어주기를 희망할 것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 속에 갇혀 두려움을 느낄 때는 어디선가 한 가닥의 희미한 불빛이라도 비추어지기를 희망하게 될 것이다. 암이나 기타 불치병 환자는 좋은 의사를 만나 병을 완치할 수 있기를 희망할 것이고,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해야 할 처지에 있는 죄수는 좋은 변호사 또는 좋은 판사를 만나게 되기를 희망할 것이고, 인질범에 잡힌 사람은 유능한 경찰에게 희망을 거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또한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처럼 무너진 건물더미에 깔려 어두운 땅 속 어딘가에서 숨을 헐떡이며 죽음의 순간만을 기다리던 사람은 구조대가 유일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렇듯, 자신에게 물리적으로 다가온 위해로부터 구원받기를 희망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정신적인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희망하는 경우도 많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또는 현재의 삶에 대한 무력감이나 고통스러움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그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활이 어떻게든 좀 나아질 수 있기를 늘 희망하고 있지 않나 싶다.
직장생활에 있어서 특히 그런 현상이 많이 눈에 띈다. 과거 일본의 경우가 그랬고 우리나라도 평생직장이란 말이 상식으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IMF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직장에서 정년퇴직이 미덕이었고 인사와 급여 등에서도 장기근속자를 우대하고 정년퇴임식까지 성대하게 베풀어주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엔 신입사원들은 그런 사실에 대해 참 신기해하는 눈치다. 입사하자마자 잘릴 걱정부터 하는 것이 요즘 직장인들의 일반적 정서가 되어버린 상황이기도 하다. 정규직원으로 입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일 뿐만 아니라, 연봉계약직 자리일망정 또 얼마나 구하기가 힘든가. 기존의 정규직원들조차 계약제로 신분이 점차 바뀌어 가는 마당이다. 계약직이든 뭐든 그나마 아무리 노력해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좌절하거나 패배의식에 깊숙이 사로잡히다가 아예 폐인이 되기도 한다. 요즘은 정년퇴직을 하는 분들이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갖기도 한다. 정년퇴임식을 아예 행하지 않는 직장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리 오래지 않은 기간 동안 직장 문화가 이렇게나 달라졌는지 격세지감을 느낀다.
운 좋게 입사하여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좌절이나 절망감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운 때문이든 실력 때문이든 승진에 항상 누락되거나 근평불량자가 되거나 본의 아니게 징계를 받게 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회사 경영악화로 임금이 삭감되는 경우도 많고 명예퇴직을 종용받는 사례도 허다하다. 기도 한다. 그럴 경우엔 당사자 개인적으론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좌절하거나 절망하게 된다. 그럴 때 만일 자신의 미래에 대해 실낱같은 희망마저 사라져 버린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희망은 물질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일 수도 있다. 희망은 막연한 것일 수도 있고, 가능성이 있는 일에 대한 구체적 기대일 수도 있다. 어떠한 경우든 희망이란 좋은 것이며, 희망을 가지는 일에도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새는 아무런 수고 없이 공중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공기를 박차는 양쪽 날개의 끝없는 날갯짓 때문이고, 사람이 자아를 느끼고 삶의 힘을 잃지 않는 것은 사랑과 희망이 정신의 혈관을 쉴 새 없이 펌프질하기 때문이다. 희망은 삶에 힘을 주고, 희망은 노력하고 용기가 있는 자에게 생긴다. 고액의 복권에 당첨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막연한 기대일 뿐이지 희망이라고 까지야 할 수 있겠는가. 아무런 노력과 인과관계 없이 복이 굴러 들어오길 기다리기만 하는 자에게 희망이란 것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나의 지인 중엔 아주 오랜 세월동안 주 1회 정도씩 자원봉사로 지체장애인들을 가르치는 분이 있다. 그렇지만 그런 일에 생색낸다거나 보상을 기대하는 모습이라곤 전혀 찾아보기 힘들었다. 또 내가 다니는 직장에도 불우이웃을 돕는 자원단체가 있다. 뜻있는 직원들이 스스로 회비를 내고 기회 있을 때마다 양로원이며 고아원 등을 방문한다. 이런 경우는 어두운 곳에 서 있는 사람들에겐 그 분들이 바로 희망 그 자체일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좌절과 절망에 빠졌을 때, 자신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기보다는 내가 나 자신의 희망이 될 수 있는 지혜를 가져보면 어떨까. 내가 나 자신을 믿고,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희망 속에 잠길 수 있다면 나는 더욱 강한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연후 자신이 다른 사람의 희망이 될 수 있는 존재까지 되어보자. 내가 나 스스로의 희망이 되고, 때론 다른 사람의 희망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될 때, 비로소 삶의 진정한 가치와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희망이 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지탱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힘의 원천일 것이다. 그리고 희망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 않을까 한다. 희망이란 말은 참으로 듣기 좋은 말이며, 언제나 가슴 벅차오르는 말이다. 연인을 기다리듯 마음 설레는 말이며, 누군가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때론 누구로부터 간절히 듣고 싶기도 한 바로 그 말, “당신은 바로 나의 희망입니다!”
*한맥문학 2005.11월호 수록
|
 |
|
21. 
1
3 
추천
:
황우석과 한국의 황색저널리즘 
비 갠 날은 조깅을 즐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