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와 산 그리고 인간 * / 안재동
매화나무, 배롱나무, 자작나무, 상수리나무, 단풍나무, 전나무, 은사시나무, 느티나무, 소나무, 버드나무, 향나무, 대나무, 백양나무...나무의 이름들은 하나 같이 아름답고 귀엽고 정답다. 하지만 이름만큼이나 나무들은 행복하진 않다. 가끔은 귀 기울여 나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어 보자.
"지금쯤/ 노을 아래 있겠다/ 그 버려진 아이들/ 절뚝거리는 은행나무/ 포클레인에 하반신 찍힌 느티나무/ 왼팔 잘린 버즘나무/ 길바닥에서 주워다 기른/ 신갈나무, 팥배나무, 홍단풍/ 지금쯤 / 찬눈 맞으며/ 들어올린 팔뚝 내리지도 못하고/ 검단산 바라보고 섰겠다"(나무 고아원 1-최문자)
몇 년 전이던가 연간 법정공휴일이 많다 해서 법정공휴일을 다소 축소한 적이 있다. 그런 와중에 식목일이 법정공휴일에서 제외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식목일날엔 내가 소속된 회사에서도 마찬가지고 각급 관청, 학교, 기업체 등에서는 의례적이건 실질적이건 소속 직원들을 동원하여 나무심기 행사를 갖는다.
그렇게 심는 나무들 수가 얼마나 많은지, 제대로 심어지기나 했는지, 무럭무럭 잘 자라줄는지가 의문이긴 하지만 한 해에 한 번만이나마 나무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사람은 허파 없이는 살 수 없다. 손이나 팔, 다리, 눈, 귀 등 다른 일부 기관들이 없으면 살 수 있을 진 몰라도 허파 없이는 절대 생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무는 인간에게 신선한 산소를 공급하고 지구상에 오염된 공기의 과반 정도를 산에서 빨아들이고 있다 하니 지구의 허파와 다름 아닐 것이다.
지구의 허파가 깨끗하고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하는 한 지구 생물체의 생존은 보장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구의 허파인 산림이 훼손되고 더렵혀져 가고 있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나무는 도시나 농촌 할 것 없이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산에 많이 군락하고 있다. 산은 나무가 우거져야 보기도 좋고 산소도 많이 배출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대머리처럼 민둥산이거나 나무가 아주 조금 밖에 없는 산이 요즘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사람은 산에서 어머니를 본다"는 말도 있고, "산은 60억 지구인들의 어머니"란 말도 있다. 나일에서 리오그란데에 이르기까지 세계 주요강의 상류는 산에서 시작하고 이에 따라 세계 인구의 50% 이상이 산에서 물을 구하고 있다고 한다.
유엔은 개발과 전쟁으로 신음하는 산을 지키고 존엄을 되찾는 캠페인을 벌이는 내용으로 지난 2003년을 산의 해로 정하기도 했다. 지금 세계 인구 60억 명 가운데 10분의 1이 산에서 살고,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27건의 분쟁 중 23건이 산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인구 30억 명이 물을 산에서 얻는다는데 그 생명 원천으로서의 역할이 반감(半減)에 반감을 거듭하고 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산은 오랜 옛날부터 인간에게 꼭 필요한 물은 물론이고, 산짐승과 같은 육고기, 땔감, 목재, 과일, 채소, 산나물, 감자나 사탕수수와 같은 식량, 각종 약초 등 의식주와 경제활동에 필요한 다양한 원료를 제공해 왔다. 심지어 금, 석탄, 기타 각종 귀중한 광물자원까지도 대부분 산에서 나온다. 그 때문에 인간은 산을 끝없이 파헤친다. 이런 인간의 행위가 끝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 것이란 사실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지금까지 굴러온 인간 역사의 수레바퀴는 피와 전쟁의 반복이었음에 다름 아니다. 국가간 종족간 전쟁이 있을 때마다 인간들은 산으로 도망가서 은거하는 일이 많았고 산에서 싸우기도 했다. 우리 주위의 여러 곳에 산성이 많은 것을 보면 쉬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단군성지도 마니산에 있고 전세계적으로도 신전이나 사찰들이 산에 많이 있다. 그만큼 산은 인간의 생활무대 그 자체인 셈이다. 사람들은 때론 산에서 휴식을 얻고, 행복감을 느낀다. 나무가 우거진 산이나 숲에선 사색이 샘솟듯하고 지혜를 얻게 된다.
산이나 우거진 숲속에 있게되면 삶의 잡념이 떠나가고 마음이 거울같이 맑아지게 됨을 느끼게 된다. 산림 속에서 자아를 발견하고 대자연의 위대함에 휩싸여 인간 본연의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얻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느낄 수 있다.
복음에서도 산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떠나거라. 장차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라고 하니, 그는 70 평생을 살던 고향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떠나게 되었고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을 데리고 산에 올랐다가 하나님 마음에 들어 축복의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모세가 산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되고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던 백성을 해방시키라는 명령을 산에서 받았고 또한 산에서 십계명을 받았다고 한다.
산에서 음악이 나오고 철학이 나오고 산에서 문학도 나온다. "야훼는...아담과 하와에게 마술나무의 동산을 떠나라고 명령하고 나무가 없는 들판으로 내몰았어. 이것이 바로 인간에게 내려진 저주야. 인간은 식물의 세계에서 쫓겨나 동물의 세계로 떨어졌지. 동물의 세계가 뭐냐고? 사냥, 폭력, 살인, 공포가 난무하는 세계지. 반대로 식물의 세계는 태양과 땅의 협력 속에서 고요히 성장하는 세계야. 그래서 어떤 종류의 지혜든 간에 모든 지혜는 나무에 관한 명상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지"(나무동화-미셸 투르니에 외 지음). 이렇듯 나무와 산은 생활 문화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의 삶과 분리될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산에서 자라는 나무와 식물들이 우리에게 신선한 공기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사람에겐 허파가 있어 숨을 쉬듯 지구에겐 산이 있어야 숨을 쉴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점이 어쩌면 나무에 대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일 수가 있다.
우리가 나무와 산에서 얻는 혜택이 엄청나지만 나무와 산을 보호하려는 노력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헤아리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나무와 산이 줄어들수록 점점 지구의 생태계는 비정상적이 되고 끝내 생물이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해갈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점점 생태계가 심하게 교란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각종 자원개발, 댐건설, 주거지 조성, 유락시설 개발 등으로 산을 온통 파 뒤집고, 도로개발을 위해 산의 맥을 두동강 내 놓기도 한다. 인재에 따른 산림자원의 손실도 이만저만 아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 화재로 인해 벌거숭이가 되는 산이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남발되는 산림 벌채도 문제이고, 도시화나 산업화로 인한 수질 오염, 댐 건설, 날마다 산 속에 버려지는 엄청난 양의 온갖 화학물질 쓰레기는 어떤가.
문제는 그런 추세가 멈추기는커녕 더욱 속도를 더해 가고 있다는 데 있다. 100년 전에 비해 유럽 알프스의 빙하는 반쪽밖에 남지 않았으며 아프리카 케냐 산의 경우 빙하는 8%로 쪼그라들었다고 한다.
이제 인류는 발등의 불이나 다름없는 환경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분명히 지금 당장 고민하고 대책 수립에 착수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안일하고 태평해 보인다. 환경 파괴는 생태계의 변형을 초래하고, 생태계의 변형은 인류의 후손들을 기형으로 만들게 될 것이다. 바로 지금 우리 모두가 산림보호에 매진하지 않으면 어쩌면 우리 모두는 지금 기형인들의 선조가 되는 과정에 놓여 있는 지도 모른다.
나무와 산림자원의 보호와 육성은 생명산업이다. 오래 전의 민속문화와 전통 신앙이 나무와 산, 바람, 물 등 어느 것 하나 섬기지 않는 자연물이 없었듯이 우린 이제 다시 나무도 섬기고 산도 섬겨 보자. 우리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좀 더 자연과 친숙하게 바꿔 보자. 자연과 공생해야 살 수 있다는 지혜를 가지고 생명윤리를 재창출해 나가자.
《한맥문학》2005년 3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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