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택 * / 안재동
인간은 일생 동안 선택이란 것을 몇 번이나 하게 될까? 인간은 자신의 목숨과 바꿀 만한 또는 자신의 직업이나 배우자를 결정할 만한, 좀 드물고도 중요한 선택을 할 때도 있고 “아침을 먹을까 말까?”, “오늘 점심은 뭘 먹지?”, 자가용으로 움직일까 대중교통으로 움직일까?“ 등 일상적이고도 사소한 선택을 취할 때도 있다. 인간은 아마도 ‘선택에 따라 살고 선택에 따라 죽는’ 팔자를 지니고 태어나지 싶다. 선택이란 이 세상의 수많은 생명체들 중 인간만이 행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선택은 ‘필수’ 또는 ‘의무’의 상대적인 개념이지만, 실상 ‘필수’라든가 ‘의무’란 것은 얼마나 부담스럽고 회피하고 싶은 대상인가? 그렇기에 어떤 일에 ‘선택’의 여지가 주어진다는 것은 큰 축복인 셈이다.
그러나 인간이 일생 동안 의식적거나 무의식적으로 무수히 많은 선택의 기회를 가지게 되면서도 항상 ‘좋은’ 결과만 거두진 못한다. 좋은 선택의 기회를 가졌음에도 그 결과는 불행으로 끝날 순 있겠지만, ‘선택의 여지’조차 없다는 사실은 참 불행한 것이다.
선택은 자아의지와 이성에 의해 행하여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강요된, 즉 비자발적 선택도 더러 있다. 요즘은 흔치 않지만 전근대 시절의 혼인 문제(부모가 결정권을 전적으로 행사하던)라든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이나 무력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할 때 등이 그것이다.
‘불장난’처럼 위험하지만, 별 생각 없이 취하는 선택도 있고, 사소한 일이지만 고민 고민 끝에 실행에 옮기는 선택도 있다. 이 모두가 우리네 삶의 순간순간에 발생하는 ‘선택’의 사실인 것이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선택의 기로 앞에서 발걸음을 옮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실화를 소재로 제작된 『오픈 워터 (Open Water, 2003년 제작)』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미국인 부부 다니엘(Daniel Travis 扮)과 수잔(Blanchard Ryan 扮)의 이야기로써, 그 부부가 모처럼 휴가에 나섰는데 목적지는 바하마의 해양관광지였다. 휴가지에서 여장을 풀고서도 부부는 휴가 기분을 못 내고 있던 중 스쿠버 다이빙 코스로 갔다. 그런데 그 코스에서 가이드의 인원 체크 실수로 말미암아 배에서 뛰어내린 22명 중 다니엘 부부만 바다 한가운데에 남게 된다. 그러자 부부는 해류로 인해 장시간 떠밀려 다니기 시작하고, 와중에 상어의 공격까지 받게 되는가 하면 추위와 공포 등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두 사람 모두 바다 한가운데서 죽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느낀 것은 다니엘 부부의 죽음 역시 ‘선택’이란 명제와 무관치 않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선택은 대부분 일상의 것이요 거의 무의식적인 가운데 이루어진 것임을 엿볼 수 있다.
우선 그들의 바쁜 생활 속에서 ‘휴가를 갈까 말까’ 하면서 고민 끝에 취해졌을 ‘선택’이 그것이요, ‘휴가지는 또 어디로 할 것인가’ 하는 선택, 휴가지에 널린 많은 엔터테인 종목들 중 하필 ‘스쿠버 다이빙 코스’를 선택한 점, 그리고 다니엘 부부가 타고 왔던 배가 그들도 모르게 떠나고 난 직후, 좀 먼 곳이긴 하였지만 인근에 다른 배도 한 척 있긴 있었는데 그곳으로 헤엄쳐 갈 것인가 말 것인가(그들의 배가 되돌아오기를 기다릴 것인가) 하는 선택 등이 그것이다. 다니엘 부부는 오랜 시간 망망대해 속에서 점점 힘과 의식을 잃어가게 되지만 와중에도 잠깐 다투기도 한다. 그 다툼 중의 하나가 ‘바쁜 와중에 휴가를 결행키로’ 한 ‘선택’에 대한 책임 때문이며, 서로 ‘네 탓’이네 하고 공방전을 연출한다. 인간은 아침에 잠에서 깨면서부터 밤에 다시 잠들 때까지 크고 작은 수많은 선택의 선상을 걷게 된다.
살다가 때론 과거를 되돌아보게도 된다. 그럴 땐 지나온 역정에서 취하였던 수많은 선택의 상황이 주마등처럼 스쳐갈 것이고, 그 속에서 안타까움이랄까 후회랄까 가슴을 짓눌러오는 그 무엇도 느껴질 것이다. 그런가 하면 때론 그 때 참 ‘참 잘 했었지’ 하는 만족감도 들 것이다. 과거 한 순간의 선택이 결국 오늘의 자신을 있게 했을 것이며, ‘다시 그 한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애절한 심정에 빠질 때도 있을 것이다. 장기판이나 바둑판에서 코너에 몰려 쩔쩔 맬 때 ‘한 수만 물릴 수 있다면….’ 하는 전전긍긍한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있듯이 한 번쯤 자신의 현재 처지를 과거로 되돌리고 싶은 충동 역시 ‘선택’의 산물인 것이다. 즉, 과거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른 쪽으로 선택을 취할 수 있을 테니까…. 결국 인생의 성패(成敗)는 선택에 달린 문제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선택을 늘 잘하는 사람이 흔치 않을 뿐더러 선택만 잘했다고 만사형통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란 말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자신의 삶을 언제나 ‘되면 되는 대로’ 식으로 내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살다 보면 아주 중요한 선택을 취해야 할 상황도 자주 발생하기 마련이고, 그때마다 그 선택이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선택에도 요령과 기술이 필요하다. 과거 한때 유행처럼 회자되던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어느 가전사의 광고 문구도 가끔 생각나지만, 선택은 정말 잘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중국의 병서(兵書) 『손자병법(孫子兵法)』에서도 잘 읽을 수 있지만, 그 속에 나타나는 수많은 전술 전략 역시 선택의 기술이나 요령과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 가치관, 통찰력 등을 총동원하여 신중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별 생각 없이 단순하게 실행한 선택과 확고한 신념하에 요령껏 취한 선택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한 선택은 비록 그 결과가 안 좋아도 후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끔 실행하는 ‘복권 구입’도 선택 행위의 하나요, 복권을 사더라도 아무 때나 막연히 산 사람보다는 무슨 특별한 꿈을 꾸었을 때 취한 사람이 거액 당첨 확률이 높았다는 소문도 있다.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인생담(회고록 등)을 들어보면 그 성공도 대개 선택을 잘 한 결과임을 느끼게 된다.
선택에는 행운이란 것도 따르겠지만 불행도 따를 수 있다. 막연히 선택을 취하고 ‘되면 되는 대로’ 그 결과에 순응하기 보다는 선택 앞에서 ‘어떻게 잘’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흔히 우리는 운명이니 인연이니 하는 말들을 듣게 되지만, 그런 것도 실은 ‘선택‘과 무관치 않다. 자신 앞에 다가서는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취사(取捨)에 따라 여부가 달라지는 것이다.
인간의 출생과 죽음(노환 등 자연사)은 자신의 의지에 달린 일이 아니겠지만 어떻게 죽느냐, 즉 명예롭게 죽느냐 아니면 이름을 더럽히며 죽느냐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라 할 수 있다.
* 월간《한국수필》2011년 5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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