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21.   13 
기관장
추천 : 137 이름 : 안재동 작성일 : 2011-06-11 18:29:19 조회수 : 2,312
* 기관장 * /  안재동

  시장, 군수, 경찰서장, 공기업 사장 등을 비롯한 각종 공공 기관의 대표, 각급 학교장…. 그들의 공통점은 기관장(機關長)이란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희구하고 선망하는 대상이다. 말 한 마디에 구성원들이 이리 저리 움직이고 경우에 따라 그들의 장래와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모든 구성원들로부터 자발적 또는 비자발적으로 대우받는 소왕국의 왕과 같다고나할까. 한 마디로 대단한 자리다. 
  그런 위치에 오르기 위해 사람들은 평생을 건다. 그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자신을 불태운다. 때론 정공법으로 때론 편법으로, 산을 오르듯 힘겹게 고지를 향해 올라간다. 각급 기관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그 속에서 희열과 좌절을 반복하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생을 이어간다.
  필자의 경우도 28세 청년시절에 모 기관에 입사하여(그 전에 다른 직장 두어 군데씩이나 다니긴 했지만) 이젠 정년(만 58세)을 6년 정도 앞두고 있는 처지다. 햇수로는 한 직장에서 24년 남짓이나 채웠지만 아직도 목적지가 너무나 높고 멀다. 
  한 기관의 장(長)이 되기 위해서는 소속 기관의 말단 계급에서부터 중견, 고위직급, 임원급에 이르기까지 레벨별로 동기는 물론 선후배 등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쳐야 한다. 그런 가운데 운 없거나(업무상 각종 사고 등) 윗선에 잘못보이거나 무능력자로 찍히면 본의 아니게 잘리기도 한다. 한 마디로 생존경쟁이다. 그렇게, 피 말리는 스트레스와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계단을 밟듯 차근차근 올라가야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음이 일반적이지만, 안타깝게도 절대 그런 식으로는 장(長)이 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소속 구성원 중에서 발탁 임용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낙하산’ 이라 하여 외부에서 갑자기 그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앉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떻거나, 한 기관의 장이 되기란 정상적인 과정으로는 그렇게 어렵기도 하다. 그래서 수많은 이들이 그 중도에서 비관 또는 절망하고, 그 결과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는 등 개인별로는 기구한 인생사가 연출되기도 한다. 
  그런데, 돈이 엄청 많은 부자든 좀 가난한 자든 혹은 땡전 한 푼 없는 알거지든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 있다. 어쩌면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랄 정도로 무제한인 것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공기다. 어쩌면 이마저도 요즘은 상품화 되어 사고파는 세상이 되었으니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겐 불공평하다 할 수 있겠다. 또한 서울 같은 대도시 사람들은 시골에 비해 항상 탁한 공기를 마시며 살아가고 있다. 문화적 혜택이나 생활의 편의가 큰 대신 좋은 공기를 마시지 못하니 건강에는 좋지 않다. 이는 시골사람들에 비해선 손해를 보는 셈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굳이 좋은 공기를 마시려면 금전을 지불하고 가공품 산소를 구하든가 시골로 내려가면 된다. 이러한 현상은 불공평한 것 같지만 거주지 선택에 따른 대가일 뿐 실은 원천적으로 공평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엔 공기처럼 공평한 것도 없다.
  그런데 공기처럼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 또 있다. 이름 하여 ‘기관장(器關長)’이란 존재이다. 이는 필자 나름으로 정리한 표현으로써, ‘기관장(機關長)’과 발음은 같지만 기능과 역할은 다르다. 다름 아닌 신체 내 수많은 장기(臟器) 또는 기관(器官)을 관리하는 주체를 일컬음이다. 
  사람의 몸에는 간이며 신장이며 위장, 간장, 대장, 십이지장, 콩팥 등 각종 장기(臟器)를 비롯하여 눈, 귀, 코, 입, 혀, 식도, 뼈 등 수많은 기관(器官)이 존재한다. 장기(臟器)니 기관(器官)이니 하는 따위의 호칭 구분에 시비가 좀 있을 수는 있겠지만, 본 고(考) 진술의 목적상 그런 것들을 통틀어 ‘기관(器關)’이라 칭하고 싶다. 아무튼 사람은 누구나 생리적으로 그런 ‘기관(器關)’들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며, 어느 한 기관에라도 이상이 발생하면 목숨까지 잃는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 어느 장기가 중요하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 같이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몸속에 있는 그런 수많은 장기를 관리해야만 하기에 ‘기관장(器關長)’인 셈이다. 
  그렇지만 몸속의 그런 기관들을 오래도록 잘 관리하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수록 장기를 손상시킬 확률도 높아진다. 식생활 관리를 잘못해도 그렇고 사고나 감염으로 갑자기 장기가 손상되기도 한다. 그렇듯, 몸속의 모든 장기를 평생 잘 관리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평생 동안 병원에 한 번도 안 가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런데 ‘기관장(器關長)’과 ‘기관장(機關長)’, 양자는 개념은 물론이려니와 실제도 다르지만 비슷한 점들도 있다. 비슷한 점 하나로는, 어느 쪽이든 ‘엿장수 맘대로’처럼 관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몸이 아파도 참고 병원에 안 갈 수 있듯, 본인이 장(長)으로 있는 기관(機關)의 어느 부서에 문제가 생겨도 모른 체 내버려 둘 수가 있다. 하지만 양자 모두 적기에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큰 문제에 봉착하고 만다. 그런 측면에선 ‘기관장(器關長)’이나 ‘기관장(機關長)’이나 그 역할이 참 비슷한 것이다.
  또 ‘기관장(器關長)’과 ‘기관장(機關長)’의 차이점들도 존재한다. 그 하나로는, ‘기관장(器關長)’은 평생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지만, ‘기관장(機關長)’은 아쉽게도 일정 기간 밖에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임기가 만료되거나 정년을 맞는 등 때가 되면 자리를 반드시 물러나야만 하는 것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청년기 때보다는 신체의 기(氣)나 저항력이 점점 약화되기 마련이기에 몸이 더 자주 아프게 된다. 그럴수록 신체 관리는 더욱 중요해진다. 이럴 때, 자신의 몸 하나 스스로 잘 관리(器關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일개 기관의 장(長)의 역할(機關관리)인들 잘 할 수 있을까 싶다. 역설한다면, ‘기관장(器關長)’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훌륭한 ‘기관장(機關長)’도 될 수 없을 것이란 말이다. 
  ‘기관장(器關長)’이든 ‘기관장(機關長)’이든 좋은 관리 자세와 철학이 양자 모두에게 필요하며,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관장(機關長)’에 대한 희구와 미련보다는 좋은 ‘기관장(器關長)’이나 되는 것에 더 큰 만족과 가치를 느끼게 된다.


* 계간《현대수필》2010년 가을호 수록

선택
기억과 망각 사이
Copyright 1999-2026 Zeroboard / skin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