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혜 * / 안재동
살다보면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은혜를 베풀기도 하고 은혜를 입게도 된다. 그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 사는 곳에서라면 어쩌면 일상적으로 빚어지는 일일 것이다. 또 그것은 본의건 아니건, 즉 필연이건 우연이건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겪을 수밖에 없는 끝없는 반복과 순환의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은혜를 베풀기보다는 받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더러 있는 반면 받기보다는 베풀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베풀기도 받기도 싫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은혜란 참 묘하다. 받으면 받을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빚처럼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남에게 신세를 진다는 표현이 더 옳을 지도 모른다. 역으로 은혜를 베풀면 베풀수록 기분이 좋아지지만 그에 따른 부담 또한 생성될 수 있다. 사람마다 경우는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은혜를 조건 없이 무한정 베풀거나 받기란 참으로 쉽지도 흔치도 않다.
남으로부터 은혜를 받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일이 아닐까 한다. 그런 ‘감사’의 마음이 없고서야 은혜를 베푸는 사람에게나 받는 사람에게나 무슨 의미로 남을까? 또 한 가지는 중요한 것은 누군가로부터 은혜를 받았다면, 꼭 그만큼은 아닐지라도 형편껏 다른 누군가에게 베풀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현상이 빈번할수록 우리 사회는 늘 따뜻하고 미소로 가득찰 것이다. “은혜를 베풀었을 때는 그것을 결코 기억하지 말고, 은혜를 입으면 결코 그것을 잊지 말라.” 라는 ‘킬론’이란 사람의 명언도 생각난다.
그러나 오늘날엔 물질만능주의 세태와 이기주의 심리의 팽창으로 사람끼리 은혜를 주고받기는 고사하고 사기나 갈취 등 해악(害惡)이나 가하는 일이 잦아진 상황 같아 참으로 안타깝고 걱정스럽다. 뿐 아니라, 베푸는 수단과 내용 측면에서 일종의 조건부, 대가성(代價性), 함정 등과 같은 ‘검은 은혜’ 에 해당하는 것들도 적지 않다고 보기에 더욱 그러하다.
사회의 평화와 인류의 행복, 그것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순수무구(純粹無垢)한 ‘은혜’와 진심어린 ‘감사’ 그 두 마음에 달려있지 않을까 한다.
* 단행본『그림 속의 수필』(윤재천 엮음, 문학관books刊)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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