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 대장군'이란 호칭으로 세간에 오래도록 전해져 내려온 바 있는
초한지의 영웅 '한신'.
소년 시절 고아가 되었고, 가난 때문에 불우한 세월을 보내고 있던
그에게 마을의 건달 하나가 시장 바닥에서 한신에게 싸움을 걸어온
일이 있었다.
건달은 “야 이놈아 몸뚱이만 커가지고, 칼을 차고 있으면 다냐,
속은 겁쟁이면서”라면서, “이놈아 용기가 있으면 나를 찔러봐. 그럴
용기가 없으면 내 가랑이 아래로 기어가라.”라고 놀려댔다.
한신이 그를 한참 쳐다보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엎드려 그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갔다. 그때 온 시장 사람들은 그를 겁쟁이라며 비웃었다고
한다.
후일 한신은 한고조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고,
한나라 최고 장군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옛날 그에게 모욕을
주었던 건달은 한신이 온다는 소식에 보복을 염려하여 큰 두려움에
떨고 있다가, 급기야 한신 장군 앞으로 끌려오게 되고 말았다.
그 앞에서 한신이 말하기를, '내가 그때 너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너를 죽이면 내가 살인자가 되어 도망 다닐 수밖에 없을 터이므로,
장래 내가 이루려는 꿈을 못 이룰 수 있을지도 몰라 참았다."라면서,
"수치를 감내했기 때문에 결국 큰일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라고
덧붙이는 것이었다.
한신은 벌을 받을까 봐 벌벌 떨고 있는 그를 안심시킨 후, 동네 치안을
담당하는 직책까지 부여하는 아량과 너그러움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한 한신의 일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특히 오늘날의 현대인들
에게는 참으로 감동적이며 큰 교훈으로 와닿을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자신이 이루려는 장래의 큰 목적 달성을 위해 굴욕감 정도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한신의 태도가 우선 놀랍기도 하지만, 굴욕감을
참아낸다는 것은 사실 큰 인내와 자제력 없이는 불가능하고, 대단한
용기마저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소한 감정조차 제어하지를 못해 욕설을 퍼붓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다반사요, 사람까지 쉽게 해치거나 심지어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요즘의 세상에 한신의 그러한 일화야말로 아무리
아름답다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월간웹진<글쓰는사람들> 2006.5월호 수록
